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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진짜’ 밀레니얼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말의 진실

등록 2021-07-10 17:02수정 2021-07-10 20:57

[토요판] 밀레니얼 읽기
(마지막회) 밀레니얼은 없다

‘밀레니얼’ 단어의 빈약함과 한계
그럼에도 시대정신은 분명 존재

가능성 과잉과 무력한 불안
이 시대 살아가는 우리의 열쇳말

한 단어에 담지 못하는 넓은 세계
‘진짜’ 밀레니얼은 어디에도 없다
‘진짜 밀레니얼’은 사실 기업이나 정치권, 언론이 생산하는 담론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지갑이 언제 열리는지,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지 촉각을 세우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집단의 특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진짜 밀레니얼’은 사실 기업이나 정치권, 언론이 생산하는 담론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지갑이 언제 열리는지,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지 촉각을 세우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집단의 특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야, 우리가 그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에 쩔어 있는 것처럼 보여?”

윗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해보라는 질문을 단체 카톡방에 올린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답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회사를 잘 그만두고, 애를 낳기 싫어하고, 특이하고, 까다롭다. 싫은 소리도, 투자도 서슴없이 한다. 컴퓨터 같은 기계를 잘 만질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

이 세대에 속하는 친구들은 볼멘소리를 털어놓았다.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왜 밀레니얼 세대만 싸잡아서 ‘싸가지 없고 이기적이다’라는 식으로 몰아가냐고 말이다. “솔직히 지하철 타면 휴대폰에 들어갈 것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건 남녀노소 다 마찬가지인데 왜 밀레니얼만 갖고 그러는 거야?”

삐삐냐, 폴더폰이냐, 스마트폰이냐

어쩌면 그동안 ‘밀레니얼 읽기’라는 문패 아래의 이 코너도 앞서 언급한 밀레니얼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쓴 글들을 종합하면, 밀레니얼 세대는 등산을 좋아하고, 중고 거래를 즐기고, 확고한 선택에 따라 결혼하거나 하지 않는다. 자주 우울해하고, 구독 서비스를 종종 이용한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밀레니얼 세대’라는 정의가 매우 두루뭉술하고 투박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만 딱 잘라 밀레니얼 세대라고 정의했다지만, 성별·계층·지역과 관계없이 해당 연도에 태어난 사람들을 한 카테고리 안에 넣어 일반화하는 일은 간편한 만큼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지금의 20·30대는 전쟁이나 민주화운동 같은 큰 사건을 집단적으로 동시에 체험한 세대도 아니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에 실직한 세대도 아니다. 이동통신기로 말하자면 삐삐(무선호출기)를 쓰느냐, 폴더폰을 쓰느냐, 스마트폰을 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이전의 신세대라 불리던 ‘엑스(X) 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요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가치관, 그리고 행동 양태는 가히 상상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이 말은 1994년 <한국방송>(KBS) 뉴스에서 엑스 세대 현상을 보도하는 기자의 멘트다. 밀레니얼 세대를 두고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밀레니얼’이라는 단어는 빈약하다. 부모가 누군지, 어떤 지정 성별로 태어났는지, 어느 지역에서 나고 자랐는지에 따라 동시대의 사람이라도 달리 살아간다는 게 진실일 테니까. ‘그럼 네가 여태까지 썼던 글은 다 거짓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내가 아는 아주 좁고 선명한 세계를 바탕으로, ‘주변 밀레니얼’의 인간군상을 뾰족하게 그려낸 것에 가깝다.

이 세대와 사회를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를 빌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시대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불안과 과잉의 감각은 사회 전체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자리가 어떠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든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도전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시대의 자기계발론은 가슴 답답한 압박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과잉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한 불안 사이에서 사람들은 방황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불안에 나름대로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갑과 표만 보는 담론들

불안과 과잉이라는 열쇳말을 빼면, 나와는 영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밀레니얼들이 내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다. 고향 친구들 중 많은 수가 20대 중반에 결혼해 아이를 하나 이상 낳았고, 직장을 그만둔 채 가족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한다. 서울의 친구들 중엔 비혼·비출산·비성관계·비연애까지 마다하지 않는 ‘4비’들도 많지만, 고향의 친구들 다수는 그런 삶이나 가치관과는 몇 광년쯤 거리가 떨어져 있다.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남동생만 해도 1994년생,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지만 ‘밀레니얼’의 특징으로 꼽히는 항목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며 개인주의적인 면모가 있지만 공동체를 중시한다.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집을 ‘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 하며, 그 아이는 여자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젊은이다. 컴퓨터 같은 기계 다루기는 영 젬병이라 모바일로 현안에 댓글도 달지 않고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도 하지 않는다. 운동을 좋아하며 우울 성향과는 무관하다. 돈을 조금씩 모으면서 투자는 아주 신중하게 하는 편인데, 책이나 유튜브 등 온갖 자료를 섭렵해가며 결론을 내린다. 나이를 지우고 보면 동생의 삶은 기성세대의 생활 양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생물학적 나이가 젊을 뿐.

‘진짜 밀레니얼’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이들은 기업이나 정치권, 언론이 생산하는 담론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지갑이 언제 열리는지,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지 촉각을 세우고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 기법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집단의 특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가족보다 개인 중심이고 페이스북보다 인스타그램·트위터를 주로 사용하며 ‘미라클 모닝’으로 아침 시간을 활용하고 일주일에 한번 채식하며 때로는 멀리 떠나 빈티지 램프를 켠 채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굽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관심받기 좋아하나 사랑을 구걸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돈을 아끼지만 한번씩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플렉스’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 애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시야 바깥에 넓은 세상이

나는 전국 가운데에서도 서울, 그중에서도 마포구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망원·한남·을지로·성수에 자주 간다. 스타트업 기업의 에디터로 일하며 몇몇 지면에 글을 쓴다. 잡지를 찾아 읽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해 읽으며 독서 클럽을 만들기도 한다. 친구들과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도 서봤고 클럽하우스가 유행할 땐 거기서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유명한 전시를 빼놓지 않고 가서 보며 자기 전 인스타를 즐겨 하고 온갖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나를 위한 소비도 아끼지 않으며,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다. 겉으로만 보면 기업들이 눈여겨보는 밀레니얼 세대의 전형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나는 더 공부하고 싶지만 학비 걱정에 좌절한다. 더 활발하고 싶을 땐 우울이 발목을 잡는다. 내가 사는 세상은 좁디좁다. 내가 볼 수 있는 세상도 딱 그 정도다. 하지만 내 시야 바깥에 더없이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의심 없이 열심히 일하다가 안전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시설물 때문에 숨진 청년의 이야기는 밀레니얼 세대의 삶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지역 소도시 출신 20대 여성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가지 않고 이른 나이에 노동을 시작한 스무살 청춘, 일찌감치 아이를 낳아 젊은 어머니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여성,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파트타임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은 ‘밀레니얼 세대’로 호명되지 않는다. 한 세대에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찾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 것 같다. ‘진짜’ 밀레니얼은 어디에도 없다.

<끝> ※필자님과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천다민 뉴닉 에디터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한다. 정보기술(IT)에 능하고 개성이 강하며 부당한 일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앞날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나 때는 말이야’라고 툭하면 가르치려는 ‘라테 세대’는 모르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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