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지난 5월 말 12회까지 연재하다가 복원 수술 일정으로 휴재했던 ‘양선아의 암&앎’을 시즌2로 다시 싣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96@kakao.com)는 2019년 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편집자 주
무엇 하나도 간단한 것이 없었다.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8차 항암을 하기로 한 나는 3차 항암 뒤 유방외과에서 중간 점검을 했다. 촉진을 통해 암 크기를 확인한 의사는 암이 처음보다 0.5㎝ 줄었다며 7차 항암 뒤 다시 보자고 했다. 그날이 왔다. 지난해 6월5일 7차 항암을 끝내고 유방외과를 찾았다.
“양선아님~ 들어오세요. 침대에 올라가 사이즈 측정해야 해요. 올라가서 준비하세요~.”
진료실 두곳을 오가며 의사는 바쁘게 진료했다. 의사가 다른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동안 나는 침대에 올라가 옷 단추를 풀고 가슴을 드러내놓았다. 암 진단 및 치료 과정에서 암이 있는 가슴을 의사에게 보이는 일이 잦다 보니 유방을 드러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쭈뼛쭈뼛함도 없이 바로 속옷을 올리고 의사가 신속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의사가 암 덩이를 손으로 잡아봤다.
“많이 줄었네요.”
의사의 그 한마디에 갑자기 세상이 밝아지며 환희가 느껴졌다. 내 주변에 무지갯빛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정말요? 많이 줄었다는 거지요? 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면서 이렇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해본 적이 있던가. 암 크기만 줄어도, 통증만 줄어도, 밥맛만 좋아도, 화장실만 잘 가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의 마음’이 곰국처럼 우러나왔다. 힘든 일이 생기고 짜증 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때 그 마음을 떠올려본다. 일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던 그때를.
옷 단추를 잠그고 의사 앞에 앉았다. (아! 여기서 사소한 팁! 진료 볼 땐 앞 단추가 있는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진료받기 편하다.) ‘많이 줄었다고 했으니 이제는 수술 날짜만 잡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의사를 바라봤다. 그런데 의사가 화면을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침을 꼴깍 삼키고 의사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 짧은 몇초 동안이 영겁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 많이 줄긴 했는데 애매하네요. 암 위치가 유두 근처라…. 전 절제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부분 절제가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네? 많이 줄었는데 전 절제요? 항암을 통해 암 크기를 줄여 부분 절제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선생님, 부분 절제는 몇㎝부터 가능한가요?” “이 위치에서는 2㎝ 이하여야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암 크기가 참 애매해요. 지금으로선 확정하기가 그렇고요. 일단 엠아르아이(MRI)를 찍고 다시 보시죠. 엠아르아이를 찍으면 좀 더 명확할 것 같습니다.”
유방 전체 조직을 자르는 ‘전 절제’ 수술보다는 암이 있는 부위만 일부 잘라내는 ‘부분 절제’ 수술을 하기를 바랐다. 부분 절제 수술은 전 절제 수술보다 수술 시간이 짧고 회복이 빠르고 유방 보존도 되기 때문이다. 전 절제를 하면 유방 복원도 해야 하고 뒤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 더 많았다. 진료 후 ‘멘붕’이 된 내 마음속에서는 ‘뭐 하나 그냥 쉽게 넘어가는 게 없다’는 생각에 짜증이 솟구쳤다.
‘마음의 집’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
걷고 또 걸으며 내 마음 안아주었다
조직검사를 할 때 암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암이었다. 항암을 피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맘마프린트’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고위험’으로 항암을 해야 했다. 선항암을 통해 암 크기를 줄여 부분 절제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또 그 희망이 배신당했다. 항상 미래를 낙관하고 최악의 상황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성향의 내게 잇달아 벌어진 ‘희망의 배신’들은 더 큰 아픔이었다.
‘아…. 사는 게 왜 이리 쉽지 않지?’
인생을 살다 보면 수시로 고비가 찾아오듯 투병 과정에서도 고비가 수시로 찾아왔다. 그때 온 고비는 ‘센 놈’이었다. 눈물이 팍 쏟아질 것만 같았다. 실망과 좌절의 회오리바람이 그동안 애써 가꿔온 희망과 긍정의 싹마저 뽑아버릴 태세였다. 가만히 있으면 우울의 늪에 빠질 것 같아 일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걷고 또 걸었다.
배우 하정우가 쓴 책 <걷는 사람, 하정우>를 보면, 하씨는 힘들수록 몸을 움직인다. 특히 육체 피로가 아닌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면 가만히 누워 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답이 없는 문제들로 마음이 힘들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걸었다. 누워 있고 싶고 꼼짝도 하기 싫은 날이라도 한 발짝만 떼고 걸으면 한결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고, 급기야 그는 ‘걷기 예찬론자’가 됐다.
나 역시 이날 하씨처럼 무작정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가 걷고 또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집에서 가만히 누워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선택이었다. 한참을 걸은 뒤, 누구보다 내 마음을 이해해줄 것 같은 리아(예명) 선배와 환우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에게 하소연을 실컷 한 뒤, 집에 들어가 남편에게 안겨 한바탕 또 펑펑 울었다. 그러고 나니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전날 친구 희주(예명)가 카톡으로 보내준 김동호 목사의 유튜브가 듣고 싶어졌다. 기독교계의 원로인 김동호 목사는 폐암 진단을 받고 폐의 20%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항암 치료를 네번 받았는데, 항암 치료 뒤 암 환우들을 위해 유튜브로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라는 묵상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었다. 김 목사의 유튜브 영상 몇개를 보다 보니 부정적이고 짜증 났던 마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나지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걱정하고 짜증 내는 내 모습이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속상해하고 짜증 내지 말자. 또 아무것도 속단하지 말자.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자. 적어도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으니까. 그리고 어떤 결과든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나를 위한 최고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부분 절제든, 전 절제든. 더 중요한 것은 매일 기쁘게 사는 것. 삶에서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부분 절제냐 전 절제냐로 너무 속 끓이지 말자. 지금 내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자!’
그로부터 2주 뒤 엠아르아이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유방외과 진료실에 앉으니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의사는 영상을 보더니 “암 크기가 2.3㎝네요. 전 절제 하시죠. 안전하게 전 절제 하고 복원하죠”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 친정엄마와 나는 둘 다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항암 한번 더 남았는데 더 줄어들 수는 없을까요?” “글쎄요…. 제 경험상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0.1㎜나 줄어들까. 기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성형외과 진료 잡아드릴 테니 복원 상담하시고 수술 날짜 결정하시죠.” “림프 쪽 암은 어떨까요?” “거기는 수술해서 열어봐야 알 것 같아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의사가 전 절제 하자고 하니 눈앞이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오니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마음의 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걷고 또 걸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았다. 지난번보다 더 ‘센 놈’이었다.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기분은 착 가라앉았다. 정처 없이 ‘유방암 카페’도 돌아다니고, 유튜브도 보고, 그러면서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절망과 좌절의 회오리바람이 또다시 내 마음을 휘저었고, 나는 조용히 앉아 그 회오리바람을 응시했다. 애쓰며 피하지 않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그냥 놔뒀다. 그러는 와중 우연히 듣게 된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라는 노래 가사가 내 가슴 깊이 들어와 꽂혔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중략)/ 나의 꿈은 사라져가고 슬픔만이 깊어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짙어가는데’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최선을 다하되, 항상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에 부는 바람을 그대로 바라보며 노래를 들으며 내 마음을 꼭 안아줬다.
‘마음아, 괜찮아. 슬프면 슬프고 아프면 아프고, 두려우면 두렵고 서러우면 서럽고, 그래도 괜찮아. 그러다 또 괜찮아질 거야.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아파하고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넌 또 일어설 거야.’
사회정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