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이 검은 리본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고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카카오톡 갈무리
“이젠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대구 동구에서 맥줏집 등을 운영하는 정아무개(39)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최근 연이은 자영업자들의 죽음을 곱씹다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가 운영하는 매장 인근에서 닭꼬치집을 운영하던 40대 자영업자도 지난 1월 자신의 가게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맥줏집을 하다가 장사가 너무 안되니까 뭐라도 해보려고 지난해 말 닭꼬치집으로 업종을 바꾼 거예요. 그런데도 밤 9시 영업 제한 때문에 계속 장사가 안 되니까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손님이 많아야 1~2팀뿐이었어요. 소식을 듣고 코로나가 자영업자들을 사지로 모는구나 싶어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사정이 비슷한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는 말끝을 흐렸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20명이 넘는 자영업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자영업자 단체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자영업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사진을 검은 리본으로 바꾸는 등 코로나19로 생활고와 경영난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5일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자영업자 최소 22명이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난 12~14일까지 자체적으로 접수한 사례를 발표했다. 사망한 자영업자들은 업종별로 유흥업 11명, 식당 5명, 노래방 3명, 여행업 1명, 카페 1명, 체육시설 1명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서울 마포구에서 20년 넘게 맥줏집을 운영해온 자영업자가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알려지며 이뤄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은 집합금지 조처로 임대료가 밀리거나 매출 감소에 고통을 호소하던 이들이었다.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쭈꾸미 식당을 운영했던 자영업자는 지난 8월, 경기 안양 평촌역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는 지난 7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비대위는 또 “경기 안양 범계역 인근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는 집합금지로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없이 빈손으로 나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말 사망했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홍대 앞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ㄱ(37)씨는 지난해 8월 “혼자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떠난 여행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ㄱ씨는 건물주가 재계약을 해주지 않아 신촌에서 홍대로 가게를 옮기면서 빚을 많이 졌는데, 코로나19 이후 영업이 금지되면서 경영난을 겪었다고 한다. ㄱ씨 주점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지인 ㄴ(39)씨는 “ㄱ씨가 주변에 돈을 많이 빌리러 다녔다. 영업금지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이날 강원 원주경찰서는 지난 13일 원주에 사는 자영업자 ㄷ(52)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변에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영업자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자영업자 900여명이 모인 ‘전국 자영업 비대위’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프로필 사진을 ‘검은 리본’으로 한 자영업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을 추모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몰랐던 분임에도 눈물이 흐르는 건 그렇게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가 공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러번 유서를 써봐서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데...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비대위는 16일부터 3일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에 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최근 잇따르는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물론 1차로는 전세계적인 코로나19 재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국회와 정부도 그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국회가 현재의 사회적 거리두기 대책을 지금 당장 완화할 계획이 없고, 백신접종 확대, 집합금지·제한조치 외에 뾰족한 방역대책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한시적인 지원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인 중소상인·자영업자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넓고 얇은’ 전국민 재난지원금보다는 집합금지·제한·피해업종을 대상으로 하는 추가적인 긴급재정지원을 즉각 시행하고 손실보상을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윤주 강재구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