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입사 후 지속적인 언어 성희롱에 시달리던 파견업체 20대 직원 수영(가명)씨는 동료와 함께 사내에 성희롱 사실을 알렸다가 계약이 해지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수영씨는 동료와 함께 지방노동청에 진정을 내고 경찰에 가해직원 ㄱ씨를 고소했다. 노동청은 직장 내 성희롱을 인정했으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ㄱ씨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를 빌미로 ㄱ씨는 수영씨를 무고로 고소하고 소송비용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처럼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을 신고했다가 해고되거나 가해직원으로부터 무고로 역고소를 당하는 등 ‘보복갑질’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에 대해 지난 9월7일부터 14일까지 진행한 조사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가 불리한 처우를 당한 적 있다’는 응답이 다섯명 중 한명(21.4%)꼴이다.
무고와 손해배상을 앞세운 역고소는 피해자에 대한 신고를 취하하라는 ‘협박’이 된다. 직장갑질119는 “가해자의 역고소 협박은 피해자를 ‘쫄게’ 만들고, 다른 동료들에게 신고를 못하도록 하는 이중의 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고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고소로 이어지더라도 무고죄로 성립하기 매우 어렵고, 손해배상도 인정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무고죄로 피소된 수영씨 경우에도 지난해 12월 검찰은 “피의자가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고, 피해 사실을 회사직원들에게 알린 점, 대표이사와의 통화내역을 종합 고려할 때, 허위사실로 고소인을 무고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지난 11월에는 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마저 기각됐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신고자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한 사용자·사업주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 조항이 있지만, 이런 ‘보복갑질’이 처벌 받는 경우는 드물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4301건 중 ‘불리한 처우’로 검찰에 송치된 경우는 1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의 윤지영 변호사는 “성희롱과 괴롭힘은 증거를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회사나 가해자가 무고로 역대응하는 경우가 많다”며 “형식적으로는 적법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권리 행사를 가장한 불리한 처우라면 적극적으로 불리한 처우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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