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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속헹 목숨 앗아간 비닐하우스…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산다

등록 2021-12-10 04:59수정 2021-12-10 14:20

비닐하우스 속헹 죽음 이후 1년
경기 농장지대 숙소 가보니
개선책 나왔지만 갈길 먼 이주노동자 숙소 개선
땅주인 농장주는 기숙사 짓지만
임차농이 90%, 새 숙소 엄두 못내
여전히 누군가는 전열기에 기대 겨울 보내
경기도 북부 한 비닐하우스 농가의 이주노동자 숙소. 박강수 기자
경기도 북부 한 비닐하우스 농가의 이주노동자 숙소. 박강수 기자

캄보디아에서 온 다비(가명·44)는 하루 평균 10시간 일하고 한달에 이틀 쉰다. 2012년 고용노동부의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은 다비는 체류 기간을 두번 연장했고, 재입국을 한번 거치면서 10년간 같은 농장에서 일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온종일 쪼그려 앉아야 하는 농장일은 결국 몸을 망가뜨렸다. 지난 9월 병원에서 왼쪽 무릎 연골이 파열돼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통증이 있지만 여전히 다비는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딴다. “너무너무 힘들어요. 많이 아파요.” 그가 아픈 몸을 뉘여야 하는 ‘집’은 비닐하우스 안에 있다.

오는 20일이면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이 한겨울 경기 포천시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지 1년이 된다. 그의 죽음 뒤 올해 1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숙소 개선지침을 내놨지만 변화는 더디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고단한 몸을 뉘이고 겨울 한파를 견뎌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지난 5일 오후 <한겨레>가 찾은 경기도 북부 농장 지대에 빽빽하게 들어선 농작물 비닐하우스 사이로 듬성듬성 검은 차양막이 덮인 비닐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농장 바로 옆에서 늘 대기하며 생활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다. 검은 반원형 비닐하우스 문을 열면 샌드위치 패널로 조립한 가건물 숙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사는 노동자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보낼 시금치·열무·상추 등을 1년 내내 재배한다.

속헹의 죽음 뒤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농가는 새로운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한다. 다만 취업 기간을 연장하는 이주노동자에 한해 기존 기숙사 시설을 개보수하거나 인근 건물을 임차해 제공하는 경우 6개월, 신규 기숙사를 짓는 경우 1년 유예기간을 뒀다. 농장주 입장에서 당분간은 기숙사를 바꾸지 않아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 올해 1월 고용노동부의 이주노동자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농어업 이주노동자 99%가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에 거주하는데 이 가운데 69.6%가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캄보디아에서 온 다비가 10년을 산 숙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년 1월 비자가 만료돼 출국을 앞둔 다비는 전기장판과 온열기에 기대 마지막 겨울을 나야 한다. 박강수 기자
캄보디아에서 온 다비가 10년을 산 숙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년 1월 비자가 만료돼 출국을 앞둔 다비는 전기장판과 온열기에 기대 마지막 겨울을 나야 한다. 박강수 기자

즉 다비를 비롯한 다수의 이주노동자는 이번 겨울도 이런 비닐하우스에서 나야 한다. 다비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한 농장 숙소 역시 조립식 가건물이다. 이주노동자 7명이 비닐하우스 두채에 나뉘어 산다. 비닐하우스 숙소 안에는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부터 버려진 매트리스, 고장난 가구 등 폐기물과 살림살이가 뒤섞여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취사용으로 사용하는 액화석유가스(LPG)통과 낡은 소화기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 썼다. 난방 설비는 따로 없다. 전기장판과 온열기에 기대 이번 겨울을 나야한다. 비닐하우스 바깥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쇠파이프를 세우고 비닐을 두른 가로세로 약 1.5m 길이 정사각형 가건물이다. 화장실 바닥에 구멍을 파고 종이 상자를 덮어 놓았다.

캄보디아 출신 소쿤(가명·33)은 앞서 4년10개월 체류기간을 꽉 채워 일한 뒤 출국했다가 올해 6월 같은 농장으로 돌아왔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재입국한 노동자에게는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할 수 없지만 소쿤은 전에 살았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월세 12만원을 내며 지내고 있다. 대신 그의 외국인등록증에는 체류지 주소로 ‘빌라’ 주소가 적혔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법망을 피해 사업주가 허위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 7명이 생활하는 비닐하우스 숙소 내부에는 망가진 가구와 고장난 가전 등 폐기물이 이주노동자들의 짐과 뒤섞여 잔뜩 쌓여 있다. 검은 차양막이 덮인 비닐하우스 천장으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박강수 기자
이주노동자 7명이 생활하는 비닐하우스 숙소 내부에는 망가진 가구와 고장난 가전 등 폐기물이 이주노동자들의 짐과 뒤섞여 잔뜩 쌓여 있다. 검은 차양막이 덮인 비닐하우스 천장으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박강수 기자

물론 변화는 있다. 그러나 속도가 더디다. 이주노동자 숙소 개선도 농가 사정에 따라 ‘양극화’다. 약 8만6천㎡(2만6천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는 안아무개(62)씨는 이달말 완공을 목표로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새로 짓고 있다. 안씨는 “나만 농사짓다 관두면 상관없는데 아들이 물려받아 장기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신규 고용도 해야 돼 새로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땅주인이라 기숙사를 짓는 안씨 같은 경우는 극소수다. 농장주 대부분은 경작지에 멋대로 건물을 올릴 수 없는 임차농이다. 신규 기숙사를 제공하기 위해 대출받아 아예 빌라에 방을 샀다고 밝힌 이아무개(47)씨는 “남의 땅에 농사짓는 사람이 많아 누구나 농가주택(기숙사)을 허가받아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집주인들이 세를 잘 안 내줘, 결국 집을 샀다. 그동안은 비닐하우스 숙소라 돈을 거의 안받았는데 앞으로는 받아야 할 것 같다. 이 친구들(이주노동자)이 받아들일지 걱정이다”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접촉한 대부분 농장주들은 숙소 대책을 묻는 말에 답변을 거부하거나 회피했다.

김 목사는 “기본적으로 사업주가 기숙사를 제공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농업에서는 사업장 안에 숙소를 두고 이주노동자를 부리는 게 농장주에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농작물이 있는 비닐하우스는 온도·습도 조절 등 야간에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해 사실상 ‘24시간 노동’을 위해 농장주들이 농장 바로 옆에 숙소를 두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10년 전부터 포천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살펴온 김 목사는 농장주들이 새 기숙사를 짓는 움직임을 두고 “전례 없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반겼다. 다만 그는 “90%는 임차농이기 때문에 기숙사 지을 수 없고 임대도 한계가 있다. 농장주·사업주에 정부가 짐을 떠넘겨 지우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되고 이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 지침 발표 이후 새로 짓기 시작해 올해 연말 완공 예정인 신축 이주노동자 기숙사. 박강수 기자
지난 1월 고용노동부 지침 발표 이후 새로 짓기 시작해 올해 연말 완공 예정인 신축 이주노동자 기숙사. 박강수 기자

글·사진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허가 안나는 ‘이동식 주택’에 이주노동자 주거지원 공고한 농식품부

올해 1월 이주노동자 숙소 개선 대책을 발표한 정부가 영세 농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내놓은 ‘이주노동자 주거지원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숙소를 새로 짓기 위해 보조금을 신청했던 농장주들조차 건축 허가 및 부지 마련 등을 이유로 대거 중도 포기하면서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는 ‘이동식 조립주택’도 지원한다고 애초에 공고를 잘못냈던 것도 농가의 혼란을 부추긴 것으로 파악됐다.

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월 농식품부가 선보인 농업 이주노동자 주거지원사업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지원 사업은 강화된 고용노동부의 이주노동자 숙소 지침을 농가가 따를 수 있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농식품부는 “빈집을 고쳐 쓰거나 이동식 조립주택을 짓는 방식으로 숙소 한 곳당 최대 15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공고했다.

문제는 농식품부가 ‘이동식 조립주택’도 지원 대상이라고 공고를 잘못 내면서 발생했다. ‘이동식 조립주택’은 컨테이너 등으로 만든 주택을 철근이나 콘크리트 등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땅 위에 세워둔 가설건축물이라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식품부 공고를 보고 이동식 조립주택도 지원대상인 것으로 오해한 많은 농가들이 사업을 신청한 뒤에야 뒤늦게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원을 포기한 것이다.

연내 완공이 목표였던 주거지원사업은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경남 밀양시청 관계자는 “지난 5월 숙소 84곳을 사업대상으로 선정했으나 중간에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 44곳으로 줄었다. 사업기한을 내년까지 늘려 추가 신청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숙소 30곳을 배정받은 전남 나주시도 26곳을 선정했으나 이탈자가 늘면서 7곳만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숨진 속헹이 일했던 농장이 있는 포천시의 주거지원 농가는 ‘0건’이다. 포천시청 관계자는 “7개 농가가 사업을 신청했는데 이동식 조립주택이 건축법상 숙소로 허가를 받지 못해 모두 엎어졌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동식 조립주택이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사전에 건축법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지자체에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땅을 빌려 농사 짓는 ‘임차농’이 많다보니 정부 지원 사업이 효과가 잘 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임차농들은 보조금을 받아도 새로 숙소를 짓는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밀양시청 관계자는 “(지원 사업)임차농 신청자 자체가 적었고, 그나마도 가족 땅으로 신청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이런 농가 의견을 반영해 내년부터는 개별 농가가 아닌 지자체에 지원해 지자체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짓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박수지 박강수 기자 suji@hani.co.kr

‘속헹 동료’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10명 중 4명은 ‘우울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10명 중 4명이 치료가 필요한 우울군에 해당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이 경기 포천시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뒤 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속헹의 동료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정신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8일 국회에서 강은미 ·윤미향 의원 주최로 열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및 노동권 실태와 과제 토론회’에서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은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지난 8~10월 두 달간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6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실태조사 결과 우울증 선별도구를 통해 조사한 63명의 이주노동자 중 40.3%인 25명이 우울군으로 분류됐다. 통상 우울군은 치료를 고려해보거나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성별로는 여성 중 52.5%, 남성 중 19.1%가 우울군이었다. 남성 중 2.5%, 여성 6.1%가 우울군(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으로 분류된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특히 농축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제조업 노동자보다 우울군 비율이 높았다. 농축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63.6%가 우울군에 해당했지만 제조업은 14.8%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취약한 이유는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 탓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하며 갖은 질병에 시달린다. 실태조사를 보면 이주노동자 중 40%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29.5%는 일주일에 6.1일 이상 일했다. 최저임금 기준 이하의 임금을 받는 비율은 49.2%에 달했다. 근육통, 요통, 위장질환 등 신체적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비율도 절반 이상이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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