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숙소 방문 앞 고무대야에 받아놓은 물이 꽁꽁 얼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12월20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간경화로 숨진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31)의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당시 속헹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같이 살던 동료들은 한파에도 숙소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사건 이후 사업주가 빌라 건물을 기숙사로 제공해 숙소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한 차례 심리상담을 받았고, 추가 상담과 건강 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속헹의 죽음이 사회적 공론화가 되며 동료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생활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오늘도 비닐하우스 등의 숙소에서 먹고 자며 일을 한다. 속헹의 동료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이주노동자의 주거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이번에는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8일 고용노동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28일 속헹의 사업주에게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숙사 변경 등의 시정지시를 했다. 같은달 30일 사업주가 빌라 건물을 기숙사로 제공했고, 속헹의 동료 노동자들은 사업주와 분리돼 거주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29일 트라우마센터에 의뢰해 속헹의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상담 치료를 1차 실시했고, 이후 2∼3회 더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또 산업안전보건법상 건강검진 미실시에 대해 사업주에게 과태료 30만원을 부과했고, 오는 3월31일까지 속헹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검진을 실시하도록 지도했다.
인권위는 고용노동부가 이러한 후속 조처를 실시했고, 속헹의 동료 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 등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속헹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을 지난달 28일 제4차 상임위원회에서 부결했다. 앞서 지난달 4일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는 속헹씨 동료노동자들을 위해 △임시숙소 마련 △의료서비스 제공 △농장주와 즉각 분리 △사업장 변경 등을 촉구하며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한 바 있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법련사에서 지난해 12월20일 경기 포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한파 속에 숨을 거둔 캄보디아 이주 여성노동자 고 속행의 49재가 열렸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속헹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동료노동자들에 대한 조처가 이뤄진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은 본인이나 동료의 산업재해를 겪고도 사업장·숙소 변경, 정신적 고통에 대한 치료 등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속헹 사건처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 아니더라도 이주노동자의 주거권과 건강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검진을 시행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한 사후 과태료뿐 아니라 사전 전수 조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또 “속헹 사망 이후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의 고용허가를 불허한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비닐하우스 밖 가설 건축물은 현장 실사를 조건으로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며 “주거시설로 신고된 가설 건축물이라도 장기간 사용하는 숙소로는 부적합한 만큼 불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사건 대책위원회’는 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질적인 이주노동자 기숙사 대안 마련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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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AS] 12만원씩 건강보험 낸 속헹은 왜 치료 못 받고 숨졌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7278.html
속헹이 떠난 비닐하우스에 남은 동료들
http://h21.hani.co.kr/arti/photo/story/499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