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중공업 해양공장 H도크에 설치되어 있는 2기의 16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의 전경. 현대중공업 제공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며 2012년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이 오는 16일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에서 최종 결론난다. 6300억원대 추가임금 지급분을 두고 9년 가까이 이어져 온 법정 공방 결과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물론 다른 기업 소송에서도 소급분 지급 기준이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은 ‘정기상여금 600%, 연말특별상여금 100%, 명절(설·추석) 상여금 100% 등 800% 모두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이번 소송 쟁점은 크게 두가지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민법의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와 명절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것인가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첫 통상임금 소송 기준을 제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성(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지급) △일률성(작업 내용·경력 등 일정한 조건에 달한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 △고정성(업적·성과 등 추가적 조건과 관계 없이 당연히 지급)을 통상임금의 기준으로 삼았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의 연장·야간·휴일 수당, 연차 유급휴가 수당, 해고예고수당, 고용보험법의 출산전후휴가급여 등 유급으로 표시된 보상 또는 수당을 계산하는 데 기초가 된다. 상여금 등이 대법원이 제시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기준을 충족하게 되면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이에 따라 각종 수당이 모두 오르게 된다. 그동안 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 않은 이유다.
다만 대법원은 계약 당사자간 신뢰를 뜻하는 민법의 ‘신의칙’을 가져와 통상임금 판결의 한쪽 뼈대를 세웠다. 통상임금 확대에 따라 노동자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으로 인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신의칙 위반) 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긴 노동자 쪽의 추가임금 청구권을 제한할 수 있는 장치를 둔 셈이다. 통상임금 소송 결과에 따라 인상된 수당 소급분을 전체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기업이 대법원에 ‘경영상 어려움’을 입증하는데 사활을 거는 이유다.
1심은 노동자 쪽 손을 들어줬다. 상여금 800%를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추가 발생하는 임금소급분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반면 2심은 명절상여금(100%)을 뺀 정기·연말특별상여금 700%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보면서도 ‘신의칙 위반’을 적용해 회사는 임금소급분을 지급하지 않다고 된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6300억원에 이르는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면 재정적 부담이 커져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기거나 회사 존립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013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통상임금 소송 관련 공개변론. 한겨레 자료사진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경영 실적이 나쁘지 않다고 평가한다. 현대중공업 3분기 연결 매출액은 1조8992억원, 영업이익액은 747억원이다.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액(1조9254억원)은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50억원)은 15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올해 들어 선박 69척을 수주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2심이 대법원에서 뒤집힐 경우 회사가 내야 할 추가지급액은 2심에서 판단한 금액보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조 쪽은 최근 들어 조선 경기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신의칙 위반이 적용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서상훈 현대중공업노조 고용법률실장은 14일 “통상임금 700%는 대법원에서도 인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노동자 요구를 신의칙 위반이라 본 2심을 대법원이 확정하면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없다. 소송으로 얻는 실익이 사실상 없게 된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신의칙을 근거로 통상임금 추가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통상임금 사건을 대리한 경험이 있는 김기덕 변호사는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에 따라 통상임금을 받아야 할 권리에 대해 경영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예외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 법리적 판단을 해야 할 대법원이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의칙 논리를 처음 내놓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때도 당시 이인복 대법관 등 3명의 대법관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라 당혹감마저 든다. 거듭 살펴봐도 논리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신의칙은
통상임금 재판의 시금석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한국지엠(GM)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경영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 요구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지난해 8월 9년만에 나온 기아차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에선 “기업의 수익성 등을 고려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노동자 쪽 손을 들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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