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음식점주 오진석씨, 음식점주 공신씨, 배달기사 김인국씨, 배달기사 홍지우(가명)씨
코로나19 등으로 생존경쟁에 내몰린 배달기사와 음식점주들은 플랫폼 기업이 정하는 ‘게임 룰’에 생계를 건다. 하지만 룰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면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 뒤에 숨는다. <한겨레>와 심층 인터뷰한 배달기사와 업주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들에게 정책 마련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홍지우(가명·34)씨는 “시간이 돈”이라고 했다.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주 7일, 하루 12시간 정도 일한다. 스스로 정해둔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하면 “논스톱”으로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일할 때도 있다. 아침엔 편의점 커피로 속을 달래고, 점심은 입에 욱여넣는 김밥으로 때운다. 일을 마치고 서울 강남의 9.9㎡ 크기 고시원으로 돌아오면, 늦은 저녁을 먹으며 엑셀로 하루 벌이를 정산한다. 이후 같은 처지의 배달기사 등 14만명 회원이 가입된 ‘배달세상’ 네이버 카페 글을 보다가 잠이 든다.
홍씨는 비행 자격증을 지닌 파일럿이다. 2019년 6월 한 대형 항공사에 입사해 교육받던 도중 코로나19가 창궐했다. 2020년 4월 해고된 뒤 “배운 게 비행밖에 없”어서 배달 일을 시작했다. 이왕이면 단가가 더 높은 곳에서 배달하자고 생각해 지역 중소도시를 떠나 서울에 왔다. “이렇게 벌어도 35만원 상당의 유상종합보험, 고시원 월세와 지방 본가 월세, 오토바이 수리비 등을 쓰면 월 200만~300만원 정도 남아요. 점점 건강이랑 더 멀어지는 걸 느낍니다. 1년에 한번 건강검진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김진우(45)씨가 운영하는 배달전문 음식점 직원이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추산한 플랫폼 노동자는 66만명이다. 2020년보다 3배 늘었다. 배달·배송·운전업무 종사자가 50만2천명으로 압도적 다수다. 코로나19로 일자리에서 밀려난 이들이 큰 어려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플랫폼 노동이다. 하지만 기존 일자리와 달리 노동과 벌이의 모든 과정은 불투명함투성이다.
음식점주들도 비슷한 처지다.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배달앱을 출시하며 배달하지 않던 맛집이 배달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홍보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배달은 부가적인 영업이 아니라 주요 매출 통로가 돼버렸다. 지난해 1~11월 온라인 음식배달 서비스 거래액은 23조2800억원으로 2017년에 견줘 7.8배 늘었다.
오진석(37)씨는 경기 연천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하다 ‘노 재팬 불매운동’과 코로나19를 거치며 2020년 6월 배달 중심 치킨집으로 업태를 바꿨다. “홀 영업이 안 되어서 배달을 시작했는데 곳곳에 ‘숍인숍’(하나의 매장에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는 매장)이 생기면서 서로 나눠먹기로 ‘치킨게임’ 하고 있어요. 누가 먼저 죽느냐 경쟁하는 거죠.” 음식점주들이 자신 있는 메뉴에 ‘올인’하더라도 배달앱에 ‘노출’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여러 메뉴를 배달앱에 올려놓고 판매하는 ‘숍인숍’을 선택하게 되고, 공급자가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다.
왼쪽부터 음식점주 이천석씨, 가사 플랫폼 노동자 김아무개씨, 배달전문 음식점 김진우씨, 배달기사 김정훈(40)씨
생존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지만 플랫폼 이용사업자들은 이미 플랫폼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달 발표한 ‘온라인 플랫폼 이용사업자 설문조사’를 보면, 배달앱 이용자 67%가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으면 영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경쟁의 규칙은 플랫폼이 정한다. “배달앱에서 고객의 배달비를 업주가 부담하는 ‘팁 할인’ 프로모션을 했어요. 이 프로모션을 하면 매출의 8% 정도를 제가 부담해야 하는데, 팁 할인에 따라 배달 매출이 2배 이상 좌우돼요. 최근에 방역이 강화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팁 할인을 6월까지 연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서울 잠실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공신(40)씨의 말이다. 당산동 음식점 업주 김진우씨는 “가끔 플랫폼이 피자데이·치킨데이라면서 고객들에게 특정 프랜차이즈의 쿠폰을 뿌리는데 그런 날은 나머지 피자·치킨집은 다 죽는다”며 “배달앱이 주문 가능 시간을 새벽 1시까지 늘리면 가게 영업시간도 그 시간에 맞춰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단건 배달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예전과 달리 플랫폼이 더는 고객의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경기 평택에서 프랜차이즈 보쌈집을 운영하는 이천석(57)씨는 “배민원이나 쿠팡이츠 같은 단건 배달 서비스는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번호랑 메뉴, 금액만 알려주고 끝”이라며 “우리는 손님 주소조차 알 수 없으니 배달 지연 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답답하기는 배달기사들도 마찬가지다. 김강우(가명·38)씨는 충북 청주의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한다. 배민라이더스·쿠팡이츠 등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수도권 이외 대부분 지역은 생각대로·바로고·부릉 등과 같은 지역배달대행업체들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최근에 지역배달대행업체들이 담합해 3200원이던 배달료를 4천원으로 올렸어요. 배달대행업체가 저희에게 받아가는 수수료도 같이 올렸어요. 그런데 그런 걸 바꾸면서 종이 쪼가리 하나 보여주지 않아요.”
지난 7일 서울 구로구의 한 카페 앞에서 배달기사 김정훈(40)씨가 배달을 준비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플랫폼 이용사업자와 노동자들은 이런 곤란함들을 호소할 곳도 없다. <한겨레>가 심층 인터뷰한 배달기사·음식점주들은 입을 모아 “플랫폼 기업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거나 “소통이 되어도 알고리즘 탓만 한다”고 말했다.
“배달하고 정산을 해보면 오류가 나는 경우가 잦아요. 그래서 이메일로 항의하면 의미 없는 복붙(복사+붙여넣기) 매크로(자동 입력 프로그램) 답변이 돌아오죠. 지난해 8월에는 배달앱에서 일주일 호출을 끊었는데, 고객센터에 ‘내가 잘못한 걸 알려달라’고 했더니 ‘컴퓨터가 하는 거라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홍지우씨의 말이다. 들쭉날쭉한 배달료도 알고리즘만 탓할 뿐 기준을 알려주지 않는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기준에 맞지 않는 배달료 책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추운 날이나 비 오는 날도 어떤 날은 배달료가 확 올라갔다가 어떤 날은 안 올라가요. 일관성이 없죠. 그냥 기준이라도 알려주면 좋겠어요.” 서울에서 3년 전부터 배달 일을 하고 있다는 백지훈(가명·42)씨가 말했다.
음식점주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자주 생긴다. 김진우씨는 지난해 9월께부터 점심·저녁 바쁜 시간대마다 알고리즘이 배달앱 주문 거리를 제한해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고 했다. 3㎞ 정도 거리에 있던 주문이라도 어떨 땐 배달이 되다가 어떨 땐 안 되는 것이다. 김씨는 “한두번 주문 불가가 뜨면 고객은 바로 떠난다. 고객센터에 따졌더니 역시 ‘알고리즘으로 하는 거라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고객센터를 방어막 삼아 플랫폼 기업이 대처를 해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공신씨는 “배달 사고가 나서 항의 전화를 했더니 ‘저희는 고객센터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건의는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만 하더라”고 말했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플랫폼 기업이 배달기사나 음식점주들을 노동이나 업무 계약 당사자로 대등하게 대해달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구체적인 제도를 통해 플랫폼 기업에 책임을 물어달라고 했다.
“배달앱이 내라고 하는 수수료가 매출의 13.8%(결제 수수료 포함)인데, 신용카드 수수료도 0.2%이고,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 이자도 2%대예요. 그러니까 이건 사채보다 더 나쁜 거예요. 사채는 돈이라도 빌려주죠. 현실적으로 자영업자에게 맞는 수수료 정책을 제도화해주세요.” 오진석씨의 말이다. 공신씨는 수수료 상한제를 말했다. “영업시간 제한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는 제한하면서 플랫폼 수수료 가격 상한제는 왜 못 하나요?”
이천석씨는 수수료 인하와 함께 공식 협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카드 수수료 0.5% 내려달라고 데모한 적이 있지만, 지금 배달앱 수수료에 비하면 푼돈이죠. 음식점주와 플랫폼 기업 대표들이 만나서 협의하는 정부 기구가 있어야 합니다.”
배달기사들은 플랫폼 노동을 노동자로 인정해주는 근로기준법 개정과 함께 기준이 뚜렷한 ‘적정 배달료’를 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김강우씨는 “배달기사를 일반 노동자로 대우해줬으면 좋겠고, 나라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처럼 배달료도 업주들이나 저희가 이해할 수 있는 전국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과 지역의 배달료 차이가 너무 큰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준이 안전 배달을 유도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배달기사 홍현덕(48)씨는 “기준이 정해져 하루 8~9시간 일하면서 적정한 돈을 벌어간다면 배달기사들이 무리하게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전배달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배달제는 시간당 배달 건수를 제한하고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제도다. 홍지우씨는 “쿠팡이츠 배달기사와 사고가 난 적이 있었는데, 상대방이 유상종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 내가 피해자였는데도 내 돈을 들여 사고 처리를 했다”며 “플랫폼 기업에 유상종합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훈씨는 “유상종합보험이 1년에 수백만원에 달해 무보험 배달기사들을 양산한다”며 “배달기사를 위한 공제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가 이들의 바람을 실현할 수 있을까? 아직은 확실치 않다. 배달기사 백지훈씨는 “세대 간 갈등이나 부동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 플랫폼 노동에 대해선 후보들이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음식점주 김진우씨는 말한다. “대선 후보들 만나면 물어봐주세요. 지금 배달앱 수수료 얼마인지 아느냐고요.”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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