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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더 메마르고 강해진 바람…기후위기가 영덕 산불 키웠다

등록 2022-02-19 07:29수정 2022-02-19 11:09

[한겨레S] 뉴스분석
영덕 화재 현장르포
첫날 진압됐다가 ‘새벽불’ 재점화
축구장 500개 규모 태운 뒤 진화
기후위기 탓 건조와 강풍 심해져
예방 체계 고도화 통해 대처해야

경북 영덕군 산불 현장에 야간 강풍이 불자 산불이 크게 번지고 있다. 산림청 제공
경북 영덕군 산불 현장에 야간 강풍이 불자 산불이 크게 번지고 있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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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북 영덕군에서는 축구장 500개 규모(약 400헥타르) 산을 잿더미로 만든 불이 가까스로 진압됐다. 15일 새벽 4시께 지품면 삼화리 산에서 시작된 불은 그날 오후 5시쯤 한차례 진화됐다. 하지만 꺼진 듯했던 불은 재발화해 모두 36시간 동안 산을 태웠다. 곧 봄 초입에 들어서는 2월 중순에 대형 산불을 맞이한 것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이 영덕 산불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함께, 기후위기로 더 건조해진 날씨와 강해진 바람이 대형 산불 재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데 따른 경각심을 전해왔다. <편집자>

16일 오후 4시, 영덕의 건조해진 산림에 강풍까지 불면서 산불은 화마로 변해 영덕읍을 집어삼키듯 번져 갔다. 산불의 연기가 영덕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7번 국도 영덕읍 화수리 졸음쉼터 주차장은 산불 연기가 흐린 날 구름과도 같이 하늘을 가렸다. 소나무숲이 빽빽한 곳에 바람이 밀려들면서 불타기 시작하니 연기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간 것이다. 이날은 산불 진화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강풍도 이어졌다. 게다가 영덕읍을 중심으로 인근 지품면과 축산면 일대는 오후 5시가 되면서 초속 10m 가까운 바람이 불었다. 심지어 산불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던 화림산 일대는 초속 13m 정도의 강풍이 온 산을 쓸고 다녔다. 오후에 들어서면서 기온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오후 5시에 이미 기온은 영하 5도가량이 되었다. 산속에서 산불을 직접 마주하는 영덕군청과 남부지방산림청의 지상대원들은 힘겨운 사투를 이어갔다.

산불 맞선 주민·공무원의 사투

힘겨운 상황에서도 영덕군과 지역 주민들은 일사불란한 대응을 했다. 지상인력을 배치하고 투입하는 것부터 산불 진화에 필요한 소화용수의 공급 그리고 진화대원들의 식사와 물품 지급까지 많은 일들이 펼쳐졌다. 대규모 재해재난 대응 상황의 전개가 발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다. 화림산 자락을 에워싸고 있는 화천리, 화수리, 구미리 인근의 집들은 산불로부터 직접 피해를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영덕군청과 영덕경찰서가 힘을 합쳐 진행된 주민 대피도 망설임 없이 이뤄졌다.

영덕군은 소나무숲을 비롯한 산림자원을 활용해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높다. 그래서 평소에도 산불의 예방과 감시에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17일 오전 산불의 주요 방어선이었던 영덕읍 화천리-구미리를 오가는 임도에는 50~60대쯤으로 보이는 여러 주민들이 지상진화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계속 산길을 통해 숲속으로 오가고 있었다.

산불 진화는 헬기를 비롯한 항공진화 통제를 산림청이 담당하고, 지상진화는 단계에 따라 시·군과 시·도가 통제한다. 영덕 산불의 지상진화에서 영덕군과 지역 주민들은 현장에서 혼란과 번잡함 없이 물 흐르듯 상황 대응을 이어갔다. 불길이 계속 산을 타고 넘어갔던 심야시간에 영덕군청 직원들과 남부지방산림청 직원들은 산불의 전개를 비롯하여 화선 주변을 지키며 진화에 매달렸다.

영덕 산불의 진화는 심한 연기 탓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불길과 연기가 화림산 줄기를 따라서 사면과 능선 사이로 길게 펼쳐졌다. 이 사이사이로 산불 진화 헬기들이 쉼 없이 오갔다. 40대가량의 진화 헬기가 화림산을 사방으로 오가면서 물을 부었다. 진화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헬기는 산불 경로인 화선 가까이 강하하면서 물을 뿌렸다. 산림청의 주력 기종인 카모프 헬기 동체에 ‘산림항공’이라고 적힌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영덕 산불에는 전국에서 가용할 수 있는 산불진화 인력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특유의 국방색을 띠는 육군의 치누크 헬기와 공군의 카모프 헬기들이 와이어로 연결된 대형 물버킷을 활용해 물을 뿌렸다. 소방청 헬기와 국립공원 헬기의 로고도 보였다.

2017년 5월 강원도 동해안 산불에서 지적되었던 ‘대형 산불 진화 시 여러 소속 헬기 간의 진화 과정 혼선’은 영덕 산불 진화에서는 없었다. 해발 500m 이상의 높은 고도에서 산림청 카모프 지휘 헬기가 떠 있고 이를 정점으로 주요 산불의 전개에 따라서 진화헬기가 투입되었다. 16일 낮부터 17일 오후 3시까지 영덕읍 시가지와 7번 국도는 쉼 없이 오가는 헬기의 굉음이 이어졌다.

영덕 산불은 15일 시작되어 오전에 1차 진화가 되었다. 그러던 것이 불탄 숲속에서 다음날 새벽 재발화하여 대형 산불로 번져 간 것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산불 교과서의 핵심 구절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최근 여러 산불에서 낮에 진화된 산불이 밤에 재발화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산불은 1차 진화되어도 산림 속에 있는 수목과 수풀 그리고 지표면 토양의 표토층까지 여러 인화성 물질이 가득하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작은 연기와 불씨까지 잡아야 완전히 끝난 것이다.

진화 헬기가 산불 화선에 불을 뿌리고 있다. 서재철 제공
진화 헬기가 산불 화선에 불을 뿌리고 있다. 서재철 제공

빠른 진화대응 없었다면 ‘아찔’

영덕 산불은 산림청이 16일 아침 산불 1단계 발령을 낸 이후, 서너 시간 만에 3단계까지 최고 수준의 진화대응 단계를 발동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 재해재난 상황에서 초동단계 대응의 신속한 판단과 선택 그리고 과감하고 선제적인 집중이 관건이다. 16일 오전의 단계 발령이 조금만 머뭇거렸어도 영덕 산불의 전개는 달랐을지 모른다.

김만주 산림청 중앙산림재난상황실장은 “16일 오후 강풍으로 애를 먹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상황 판단을 하여 전국의 헬기를 끌어모아서 진화의 집중력을 높인 것이 효과가 컸다. 그동안 산림청에서 산불 재난 대비의 기초인 산림 지형에 대한 정보화를 바탕으로 많은 훈련을 전개한 것이 효과를 본 것 같다. 더욱이 투입되는 헬기 수 못지않게 진화헬기에 물을 공급해 주는 담수지가 필요한데, 화림산 주변에 5개소 이상 있어서 불행 중 다행으로 강풍을 뚫고 더 이상의 피해 없이 진화를 할 수 있었다”며 영덕 산불의 진화 상황을 설명했다.

걱정은 앞으로다. 지금 동해안권의 시·군들은 너무 메말라 있다. 이번 산불의 현장인 영덕은 물론이고 인근 울진과 영양, 봉화, 청송 등 경북 북부 지역의 산속은 계곡까지 말라가고 있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경북 동해안권과 강원 영동권이 걱정이다. 이들 지역의 소나무숲이 밀집된 지역에서 산불 위험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적어도 세번 이상의 많은 봄비가 내려 산림을 축축하게 적셔 주어야 산불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형 산불의 위험이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다. 이대로면 올봄 3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3개월간 산불특별경계태세가 이어질 수도 있다.

산불은 소나무숲이 특히 위험하다. 대한민국 산림의 약 23%가량이 소나무류의 산림이다. 이번 영덕 산불이 발생했던 화림산 일대 소나무림 분포는 60%를 넘었다. 산불이 전개된 화림산 능선에서 펼쳐진 인근 지역은 가시권이 전부 소나무숲이었다. 이런 곳에 건조와 강풍이 오면 대형 산불 위험은 최고조가 된다.

당장 다음주부터 염려가 되는 곳은 백두대간 영동 쪽인 강원도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등과 낙동정맥 동해안권인 울진, 영덕, 포항, 경주, 울주, 기장 등이다. 이 지역은 소나무림이 많거나 혹은 밀집된 산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대형 산불이 자주 났던 곳이다. 3월에도 지금과 같은 건조가 이어진다면 산림청과 경상북도, 강원도 등은 산불 예방을 위한 감시 수준을 더 높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특히 해당 시·군의 지방행정조직이 산불 감시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기후위기 향한 대자연의 경고

산불은 진화보다 예방이 답이다. 건조와 강풍이 만나는 날씨에는 얼마나 많은 눈과 발길이 산불 위험의 발화점을 감시하느냐다. 대형 산불을 막는 지름길이다. 기상예보를 예의 주시하고 해당 시·군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가용할 수 있는 많은 감시 인력이 소나무숲 주변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것이 실효성 있는 산불방지 대책이다.

기후위기로 건조와 강풍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겨울부터 봄까지 더 길어진 건조기와 더 강한 바람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포위하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진화 체계와 장비를 고도화해도 대자연의 경고인 기후위기의 변화무쌍을 감당하기는 쉽지가 않다. 좀 더 촘촘한 산림 관리를 기반으로 소나무숲의 분포와 지형공간을 고려한 산불 예방 체계의 고도화가 필요해 보인다.

영덕/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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