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틀어막히고, 억눌리고, 무력화돼,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 유세에서 ‘검찰 수사’를 수식하며 쓴 단어들이다. 그는 “민주당의 부정부패를 처단할 수 없도록 수사권을 무력화하고 이렇게 끼리끼리 해먹는 것을 국민이 다 봐서 (국민이)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한 것”(2022년 2월17일 경기도 용인)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권력을 쥔 자가 오만하게 저지른 초대형 부패는 한 번도 물러선 적 없다. 이쪽저쪽 가리지 않았다”(2월18일 경북 칠곡)고 했다. “과거 정권 말이 되면 대통령 가족, 측근 예외 없이 부정 드러나면 다 처벌”했는데 “이번 정권은 (수사를) 다 틀어막고 있다.”(2월28일 강원도 동해) “검찰이 얼마나 국민의 검찰로서 제 기능을 하느냐는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고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얼마나 존중해주느냐에 달려 있다.”(2월14일 공약 발표 질의응답)
검사 출신 대통령이 처음으로 선출됐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검찰개혁이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 당선으로 귀결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한 수사라는 명제는 문재인 정부와 동일하지만, 그 명제에 이르는 방법이 판이하다. 그가 구상한 공약은 검찰 조직의 독립과 권력의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찰개혁의 ‘후퇴’를 넘어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민주적 통제 방안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①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법무부의 ②예산편성권과 ③인사·조직에 관한 권한이다. 윤 당선자는 2월14일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총장에게 독립적인 예산편성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세 가지 중 두 가지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의 공약을 발표했다. 다른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는 여러분도 봤겠지만 악용되는 수가 더 많다. 이 제도를 만들어낸 나라에서도 (제도가) 사문화된 지 오래됐다”고 설명하며 검찰총장에게 예산편성권을 주는 방안도 “예전부터 이렇게 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밝혔다.
2022년 2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민변 사법센터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검찰 공약 규탄 및 철회 촉구 기자브리핑’에서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이나 민정수석 등 청와대 누구도 검찰 수사를 지휘할 권한은 없다. 다만 검찰청법 제8조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2005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게 최초의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그 뒤 윤 당선자의 검찰총장 재직 시절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세 차례나 발동했다. “여러분도 봤겠지만”이 가리키는 그 시기,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약(수사지휘권 폐지)인 셈이다.
수사지휘권의 남용과 폐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법조계 일각은 지적한다. 과거 검찰 출신의 청와대 민정수석, 대통령비서실장, 법무부 장관이 후배에게 지시하듯 검찰 배후에서 수사를 좌우했기 때문에 굳이 수사지휘권을 쓸 일이 없었을 뿐, 장관의 수사지휘가 공식 경로로 행사되고 공론장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이 제도가 예정해놓은 작동 방식이라는 것이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 발전시켜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아무 대안 없이 폐지를 논하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해경 해체와 다를 게 무어냐”(정지웅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는 반문도 나온다.
“수사지휘권이 문제 될 때를 살펴보면 항상 비검찰 출신이거나 검찰과 이해관계가 다른 법무부 장관일 때였다. 검찰 출신의 법무부 장관은 서면 형태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다. 그냥 전화 한 통이면 된다. 그런 게 진짜 외압이다. 선출 권력과의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를 상정하고 (최후의 보충적 수단으로서) 그 제도는 남겨놔야 한다.”(김남준 변호사·전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검찰의 독립된 예산편성권은 윤 당선자의 말처럼 그동안에도 꾸준히 주장됐다. 현재 검찰 예산은 법무부에서 편성한다. 그러나 관세청과 경찰청을 포함한 17개 외청 중 독립된 예산권이 없는 청은 검찰청뿐이다. 2019년 국회가 법무부로부터 예산권을 떼어내 검찰에 주려고 했으나 법무부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반대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검찰과 국회의 ‘직거래’ 가능성 때문이다. 검찰에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이 주어지면, 검찰총장이 국회에 직접 출석해야 해서 진행 중인 수사에 압박과 회유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검찰 출신 국회의원과 예산을 용인해주는 방식으로 교감할 수도 있다. 2004년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는 “외국의 경우에도 검찰 조직의 예산편성은 법무부에서 관장한다”고 밝히며 검찰에 예산편성권을 주는 것에 사실상 반대했다.
2021년 11월2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주자인 윤석열 당선자가 충북 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이 열린 청주시 흥덕구 국민의힘 충북도당 사무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당선자의 공약은 ‘검찰 수사’의 독립과 ‘검찰 조직’의 독립을 혼동한 결과물이라는 공통된 지적이 나온다. “검찰 조직의 독립과 검찰 수사의 독립은 다르다. 국민이 기대하는 검찰의 독립성은 검찰 수사의 독립성이다. 이는 검찰 외부로부터도 침해될 수 있지만 검찰총장같이 검찰 내부로부터도 침해될 수 있다. 검찰 조직이 외부적 통제로부터 벗어날 때 그 위험성이 더 커지고 지휘부로부터의 수사 독립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오병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행정부 내에서 민주적 통제를 받고 개별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두 가지 원칙을 잘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장치를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검찰을 삼권분립의 법원처럼 만들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헌법 원리에 맞지 않는다.”(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입지는 좁아지고 검찰권은 도리어 확대될 전망이다. 윤 당선자는 고위공직자 부패 사건에 대해 공수처의 수사우선권을 보장하는 공수처법 제24조를 폐지하고 검찰과 경찰에 병렬적인 수사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수처는) 기왕에 만든 제도이니 개선해보고 그게 안 될 때는 폐지 법안을 제출하겠다.”(2월14일 공약 발표) 대통령령을 개정해 경찰에 재수사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건은 검찰이 이관받아 직접 보완 수사하고 기소하게 한다는 계획도 눈에 띈다. 그는 “검찰이 너무 많은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6대 범죄로 축소한 검찰의 수사권이 다시 확대되고 수사권·기소권의 분리라는 흐름에 역행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당선자는 선거 유세 때마다 “(자신이) 부정부패와 싸워온 26년”을 강조했다. 그 기간은 ‘특수수사’라 이름 붙인 검찰의 직접수사가 활기를 띠던 시기와 맞물린다.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평범한 엘리트 검사로 재직하던 그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됐지만,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특별수사팀을 거쳐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7년 5월 대전고검 검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그리고 검찰총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수사는 형사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수사는 소추에 복무하는 개념이다.”(2020년 2월) 검찰총장 재직 당시 수사·기소 분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도 ‘검찰주의자’로 불렸던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윤석열 후보는 수사를 잘하는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수사관으로서 정체성과 법률가로서 정체성이 있다면 수사관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한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사를 잘하는 검사가 좋은 검사라고 착각하던 그 시대의 산물인데, 본인이 겪었던 특수한 검사, 그에 더해 수사관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제도 개혁을 본인 입장에서만 생각해 문제다.”(이국운 한동대 법학과 교수)
윤 당선자는 “검찰도 사법 업무인데, 사법 업무에 대통령이 개입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2월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수사를 공언하는 등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윤 당선자 정치활동의 바로미터는 검찰을 어떻게 다루느냐, 검찰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될 것”(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이다.
윤석열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는 전직 검찰 출신이 포진해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검찰 조직 또한 어떤 방향으로든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검사장을 비롯해 ‘윤석열 라인’이 검찰 인사에 전면 등장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검찰에서 진행 중인 대선 후보 의혹 수사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뿐 아니라, 윤석열 당선자의 부인 김건희씨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조주연 부장검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맡고 있다.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주가조작 주범들이 2021년 12월 구속 기소됐는데, 김씨의 가담 여부는 아직 수사 중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검찰이 본인의 가족과 관련된 의혹에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을 지나야 한다. 그 시기는 5월 대통령 취임식 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자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모습을 답습할 것인지, 반면교사 삼을 것인지에 따라 지지도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설사 무혐의 결론을 내리더라도 판결문에 가까운 불기소 이유가 나와야 한다.”(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협회 회장)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시대에 검찰은 어디로 흘러갈까. 그간 검찰 권한 분산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단숨에 원점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국회 때문이다. 당장 수사지휘권 폐지도 검찰청법 개정 사안이어서 국회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앞으로 2년 동안 마음대로 법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 동의 없이 개정 가능한) 대통령령으로 위임한 입법 범위를 넘나들면서 최대한 과거와 같은 수사 관행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장유식 변호사·민변 사법센터 소장) ‘검찰공화국’이라는 수사는 그저 우려에 머물 수 있을까.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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