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가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밝힌 24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를 나서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4일 오전 예정돼 있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불과 30여분 앞두고 전격 취소하면서 법무부 내부에서 당혹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 분과 위원들은 이날 오전 9시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당선인 공약에 대해 40여일 후에 정권교체로 퇴임할 장관이 부처 업무보고를 하루 앞두고 정면으로 반대하는 처사는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법무부에 업무보고 유예를 통지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9시30분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었다.
인수위가 업무보고 취소 이유로 지목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말을 아꼈다. 박 장관은 오전 법무부 출근길에 기자들이 ‘업무보고’ 일정을 묻자 “변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법무부와 대검 입장 차이에 대해서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 안 했는데”라고 했다. 이어 박 장관은 점심식사를 위해 청사를 나서는 길에도 인수위 업무보고 유예 통보에 대해 “오늘은 침묵하겠다”, 업무보고 내용 수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는 말씀을 다 드렸다”고 했다.
법무부 안팎에서는 인수위가 업무보고 자체를 거부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과 함께 ‘군기잡기’ ‘신구 세력 기싸움’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법무부에서 근무했던 한 검찰 인사는 “업무보고를 받기로 한 당일 아침 인수위가 보고를 유예한 것은 너무 감정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부는 반대 의견을, 대검은 찬성 의견을 각각 낼 수 있다. 인수위에서 다양한 의견을 취합해서 당선자가 이를 바탕으로 공약을 추진하면 되는 건데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현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공약에 찬성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과거 인수위 업무보고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새 정부가 출범할 때 부처별 이해관계에 따라 신중 검토나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부처별로 각 사안에 대해 각자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박 장관이 업무보고 전 기자들을 만나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정치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인수위에서 이점을 불쾌하게 느꼈을 수 있다”고 했다.
인수위 행보가 이해된다는 반응도 있다. 한 부장검사는 “인수위가 업무보고를 거부한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박 장관은 5년간 현 정부가 추진한 검찰개혁과 반대되는 공약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인수위 입장에선 윤 당선자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나 로드맵을 알려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법무부가 새 정부 출범 전부터 공약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면, 인수위로서는 업무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인수위와 법무부 사이 힘 겨루기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법무부 소속 검사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서울지역 한 검찰 간부는 “인수위와 법무부,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를 떠나 지금 상황에서 가장 난감한 것은 법무부 소속 검사들이다. 장관은 새 정부에서 교체되겠지만, 남아있는 검사들은 새 정부에서도 계속 일을 해야한다. 현실적으로 윤 당선자 공약을 반대하기도, 그렇다고 소속된 법무부와 다른 입장을 밝히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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