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인격권을 신설하고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를 강화하는 내용의 민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무부가 재산권 중심인 현행 민법 체계에 생명·신체·명예·사생활 등 개인의 인격권 보호 조항을 명문화한 민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판례 등을 통해 사안별로 제한적으로 인정되던 인격적 이익을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디지털 성착취물, 사이버 명예훼손, 직장 갑질, 학교 폭력, 가짜뉴스 등에 의한 인격권 침해를 막기 위한 사전적 예방 청구도 가능해진다. 앞서 2004년과 2014년에도 같은 취지의 민법 개정안이 있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5일 밝혔다. 현행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라고만 규정돼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생명·신체·건강·자유·명예·사생활·성명·초상·개인정보 등 인격권으로 보호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또 인격권 침해를 예방하고 침해 중지를 청구할 권리도 마련했다. 인격권이 침해된 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피해자가 권리 구제에 나섰지만 사후적이서서 권리 구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개정안은 현재 진행 중인 인격권 침해에 대한 중지 청구, 사전적 침해 예방 청구도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인격권은 대법원 판례와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제한적으로 인정돼 왔다. 형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었는데, 법조문으로 인격권이 명시될 경우 앞으로 인격권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한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입법 토대가 될 수 있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기존 민법 체계는 소유권 등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와 대등한 권리로 인격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판례로만 인정되던 인격권이 민법에 명문화됨으로써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도 인격권이 기존의 재산권과 마찬가지로 법의 보호를 받는 권리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불법녹음·촬영, 온라인 폭력, 디지털 성범죄, 메타버스 내 인격침해 등 기존보다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격권 침해로 인한 법적 책임이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품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교내 따돌림으로 인한 피해나 가짜뉴스 피해 등과 같이 명확하게 불법이라 보기 어렵거나 제한적으로만 불법이라고 인정받은 경우에도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할 수 있게 돼 피해회복과 손해배상이 더 용이해지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에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의 인격권도 명문화했다. 허위 기사 등으로 법인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에 대한 권리 구제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다만 인격권을 부여받은 법인이 개인의 비판을 막는 등 과도한 방어조항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영국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기업과 법인은 자기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피해를 입은 약자들의 정당한 반론권에 대해서도 법인 인격권 침해라고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인에 대한 과도한 보호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장품 변호사는 “법인의 인격권이 명문화됨으로써 인격권 침해를 빌미로 법인과 법인, 법인과 개인 사이 분쟁이 많아질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법무부는 미성년자가 부모의 과도한 빚을 떠안는 ‘빚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한 민법 개정안도 함께 입법예고했다. 현재 민법에선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이 상속개시 뒤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 등을 하지 않으면 상속채무가 전부 넘어간다. 이로 인해 미성년자인데도 부모 빚을 떠안아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성인이 된 이후에도 빚으로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해왔다.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에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뒤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인지한 날부터 6개월 내 한정승인(취득재산 한도 내에서 부모의 채무 등을 변제할 조건으로 상속 승인)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다. 법무부는 “개정안을 통해 미성년자가 부모의 빚에 구속되지 않고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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