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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국 임신중지권 퇴행해도…“한국엔 당장 영향 없을 것”

등록 2022-05-08 17:07수정 2022-05-09 02:43

‘낙태죄’ 결정문에 인용된 ‘로 대 웨이드’ 케이스
보수 미 연방대법관들이 ‘뒤집기’ 시도해도
“국내 영향 적어…한국 만의 후속조치 나서야”
3일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 시위에서 한 시민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의 폐기에 찬성한 대법관 5명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3일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 시위에서 한 시민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의 폐기에 찬성한 대법관 5명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한국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문에도 인용됐던 미국의 ‘6개월 이내 임신중단 권리 보장’ 판결이 뒤집힐 위기에 처했다. 대법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이 판결을 무효로 하겠다는 내용의 판결문 초안이 유출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미국과 달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요한 근거로 들고 있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한국 여성계는 “헌재 결정으로 임신중단이 비범죄화한 만큼, 후속조치를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니 보호받을 수 없다?

미국에서 논쟁이 일고 있는 판결은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다. 1970년 미국 텍사스주에 살던 노마 매코비란 여성이 임신 5개월에 임신중단 수술을 받으려 했으나 거부 당하자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7대2 의견으로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는 시민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4조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며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 이전의 임신중단은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임신중단을 금지해왔던 미국 각 주와 연방 법률은 폐지됐고, 1970년대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실체적 권리로 보장한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최근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중단 허용 기준을 15주로 제한한 미시시피주법의 위헌 여부를 검토한 판결문 초안에서, 대법관 다수 의견에 따라 “헌법은 임신중단 권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권리는 어떤 헌법조항에 의해서도 보호되지 않는다”며 기존 판결을 뒤집겠다는 뜻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일 이 소식을 보도하며 “이는 여성들이 직면한 역사적 차별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합법화된) 동성결혼 판결 등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에도 인용된 판결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한국의 임신중단권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한국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11일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을 당시 결정문에도 인용됐을 정도로 주요한 참고자료로 쓰였다.

당시 헌재는 임신중단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해준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외국 입법례 사례로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들었다. 헌재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취지에 따라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전까지”의 임신중단에 대해서는 허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임신중단권 관련한 대표 판례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논리를 차용한 셈이다.

다만 헌재는 이런 외국 입법례를 바탕으로 한국적 현실과 입법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헌재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임신·출산으로 인해 사회적·경제적 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은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여성의 퇴직으로 이어져 사회적·경제적 삶의 단절까지 초래할 수 있다”며 “이러한 부담과 어려움은 성차별적 관습, 가부장적 문화, 열악한 보육여건 등 사회적 문제가 가세할 경우 더욱 가중된다”고 결정문에서 밝혔다. 가부장제의 위세가 강한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강하게 보장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구성한 셈이다.

 여성계 “낙태죄 불합치 후속 논의 이어져야”

이에 여성계에서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 변경이 한국 사법부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낙태죄 위헌소송’ 대리인단을 맡았던 류민희 변호사는 “수십년간 미국 보수적인 주에서 (임신중단을 제한하는) 위헌성이 의심되는 법을 일부러 만들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적인 대법관이 연방대법원의 다수를 확보한 시기에 사건화한 것”이라며 “미국 정치 뉴스에 가까운 변화여서, 당장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성계에서는 오히려 ‘낙태죄’ 조항이 사라진 뒤 후속 조처에 속도를 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지금도 대부분의 임신중단 관련 의료행위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고, 임신중단 약물은 국내 도입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임신중단 전면 비범죄화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등 소관부처도 제대로 된 여성의 건강권을 위한 보건의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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