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러한 맥락에서, 의회가 대통령 집무실 자체를 상대적 금지가 아닌 ‘절대적’ 집회 및 시위 금지 장소로 정하는 입법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위헌의 소지 역시 상당할 것으로 보이므로, 피신청인(경찰)의 이 사건 금지 및 제한 처분은 이 점에서 보더라도 위헌 위법의 소지가 매우 크다.”
5월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하며 내린 판단 중 한 대목이다.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 신고에 일괄적으로 금지 통고를 해온 경찰에 계속 법원이 제동을 걸고 있는 가운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개정해 집무실 집회를 금지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까지 나온 것이다. 법원의 결정이 계속될수록 ‘대통령의 사적 공간인 관저와 공적 공간인 집무실은 다르다’는 결론으로 모이고 있다.
1일 <한겨레>가 5월11~27일까지 나온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결정문 6건을 살펴보니, 법원은 ‘집무실=관저’라는 유권해석으로 집무실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경찰의 주장에 다양한 관점으로 반박했다. 경찰은 국회의사당, 국무총리·국회의장·대법원장 공관 등의 100m 이내 집회 금지·제한을 규정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를 근거로 집무실 집회에 일괄적으로 금지통고를 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6일 법원은 향후 집시법을 개정하더라도 현재 경찰 방침처럼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대통령의 집무실이나 정부종합청사와 같이 온전히 ‘공적 영역’에 속한 장소로서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 원수인 대통령과 내각의 각료들이 머물면서 정부의 공적인 집무를 수행하는 장소는, (사적 공간 성격이 강한) 관저·공관·숙소와는 명백하게 그 성격이 구분된다”며 이처럼 판단했다.
그간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을 “국회·대법원 등 다른 헌법기관을 보호하는 집시법상 취지와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집무실이 행정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곳이자 집회 금지 장소가 아닌 정부종합청사와 성격이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재판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절대적’ 집회 및 시위 금지 장소로 정하는 입법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위헌의 소지가 상당하다”고 분명히 했다.
이는 앞서 법원이
국회의원 및 법관과 다른 ‘대통령 직책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시민단체의 집회를 허용한 곳과 같은 맥락이다. 지난 20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는 국회의원이나(헌법 제46조),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하는 법관(헌법 제103조)과는 달리 국가의 원수로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고충을 직접 듣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는 국가 정책을 수립하여야 하는 대통령 직책의 특수성”이라고 밝혔다. 이 재판부는 “대통령 직책의 특수성을 고려해 ‘대통령 집무실’ 등 대통령의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집회 및 시위의 금지장소로 지정하지 않되, 대통령과 그 가족의 신변과 주거의 평온 및 안전은 보호되어야 하므로 ‘대통령 관저’를 옥외집회 및 시위의 금지장소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일 법원은 경찰의 주장(관저에 집무실이 포함)을 수용하더라도
국회·법원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 금지장소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을 포함시키는 목적론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장 등이 직무 수행하는 장소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대통령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거나 대규모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집회시위는 대통령 집무실의 인근에서 개최할 수 있다고 제한해 해석할 필요성도 있다”고 했다.
집무실에 대한 사전적 해석 등을 바탕으로 내놓은
법원의 첫 판단 이후 결정이 계속될수록 재판부는 집무실 집회 금지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하며 다양한 근거를 내놓는 모습이다. 지난달 1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집시법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할 때 집무실이 관저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통상적 의미를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 안녕을 침해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우려가 증명되지 않은 집회까지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밝히며 행진 시간 등을 제시하며 조건부 허용했다.
경찰은 대형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해 대응하는 등 본안 소송을 대비하며 집회 금지통고를 유지하다는 방침을 고수 중이다. 참여연대의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대리한 김선휴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수차례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 나왔는데도 경찰이 집무실 인근 집회를 일괄금지해, 집행정지 신청과 관련한 법률 조력 등을 얻기 어려운 소규모 단체 등의 집회 위축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시민사회단체 차원의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