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 도로에 경찰버스들이 집회 및 시위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해온 경찰이 계속되는 법원의 집회 허용 결정에 전면 금지 방침을 재검토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집회 규모나 장소에 따라 경찰이 제한적으로 집회를 허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그간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가 허용된 법원 결정을 검토해 집회 규모·시간 등에 비춰 집무실 인근 집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판례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집무실 집회 대응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대응 방침을 수정할) 때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음달 2일 집무실 인근에 신고된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온 뒤, 최종 대응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집무실 앞 수천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는 없었는데, 이 결정까지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판례가 축적되고 있는 만큼 법원 결정에 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법원은 그동안 교통 혼잡과 경호 우려 등을 이유로 집무실 앞 집회를 국방부 청사 바로 앞 대신 20m 떨어진 건너편에서 열 수 있도록 하거나, 행진 시간을 제한하는 등 조건을 걸었는데 경찰도 이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의 입장 변화는 법원의 잇따른 집회 허용 결정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100m 이내 집회 금지 장소로 규정된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도 포함된다고 보고, 집무실 100m 이내 집회 신고를 일괄 금지통고했다. 경찰은 최근까지도 법원의 결정에도 “본안 소송 결과를 보고 방침을 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날까지 법원은 집무실 앞 집회 신고 금지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7건에 대해 ‘집무실과 관저는 다르다’며 모두 집회 신고를 한 단체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하며 “피신청인(경찰)의 이 사건 금지 및 제한 처분은 위헌·위법의 소지가 매우 크다”고까지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경찰청 고위 관계자도 “법원에서 계속 집무실 인근 집회 건이 인용되니, 경찰에서도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주변 ‘욕설 시위’도)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집회 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 임의대로 억누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집회 기준에 맞으면 집회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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