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중국인 대표가 운영하는 입시컨설팅 학원.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의 이모인 진아무개(49)씨는 한인 업체 주소록에 자신의 입시학원의 주소지로 이곳을 등록했다. 새너제이/김지은 기자
‘논문, 출판, 봉사단체 설립, 애플리케이션(앱) 제작 기획, 미술 전시회….’ 국제학교를 다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이 쌓아올린 ‘스펙’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표절·대필 의혹이 숨어 있고, 의혹의 줄기는 케냐를 비롯한 제3세계 청년들의 지적 착취 산업으로까지 이어진다. 한 장관의 딸은 연구 윤리를 어지럽히는 약탈적 저널을 활용하고, 미국 입시전문가인 이모 진아무개(49)씨의 딸들과 스펙을 품앗이해왔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진씨가 활동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등 실리콘밸리 인근을 방문했다. 여기는 한 장관의 딸과 ‘스펙 공동체’를 이룬 진씨 딸들이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국 명문 대학을 향한 아시아인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편법적인 기회 획득에 분노하며, 세상의 모든 출발선은 같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미국 명문 대학이라는 학벌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과정에 한국 사회 엘리트들이 동원하는 ‘글로벌 스펙 산업’의 실태와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세 차례에 걸쳐 담는다.
전세계적인 코로나19의 유행은 미국 대학 입시도 바꿨다. 2020년 6월15일 미국 하버드대는 누리집에 “학생들의 표준화된 시험 점수를 요구하지 않고 2025년 클래스(2021년 입학)에 입학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올해 표준화된 시험을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은 지원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하버드대 발표 전후로 아이비리그에 속한 8개 대학이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에스에이티(SAT) 등 표준화된 평가 점수를 내지 않아도 입학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 ‘테스트 옵셔널’(Test Optional) 정책을 시행했다. 코로나19로 에스에이티 시험이 취소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자 명문 대학들이 내린 결단이다.
정량 평가인 에스에이티 등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명문 대학 입시에서 봉사활동이나 과외활동인 엑스트라 커리큘럼의 중요도가 훨씬 높아졌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남다른 스펙을 쌓아야 하는 이중고가 생겨난 것이다. 미국에서 전공자와 엑스트라 커리큘럼 목적의 미술을 두루 가르치는 한 강사는 “미국 대학 입시에서 봉사활동 등이 중요해지면서 독특한 스펙이 늘어났다. 이제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가서 봉사활동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입시 업체를 운영하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의 이모 진아무개(49)씨는 이런 상황에서 발 빠른 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진씨의 두 딸과 한 장관 딸의 주요 활동이 2020년 6월 이후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이 설립자 및 편집장 등을 맡고 다른 한국인 학생과 함께한 온라인 매체 ‘팬데믹타임스’의 개설일은 2020년 8월14일이다. 한 장관 딸이 이끈 봉사단체 ‘피스오브탤런트’(Piece of Talent) 누리집은 2020년 6월28일, 환경단체 ‘퍼니클라이밋’(Funnyclimate) 누리집은 2021년 10월19일 문을 열었다. 이들의 논문 작성 역시 2021년에 집중됐다. 한 장관의 딸이 충북의 한 복지관에서 온라인 교육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 역시 비슷한 시기다. 해당 복지관 관계자는 앞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 장관의 딸이) 2020년 8월에 연락해서 그때부터 아이들 영어를 봐줬다”고 말했다.
논문 작성, 출판, 누리집 중심의 단체·매체 설립 및 운영, 온라인 교육 봉사활동 등은 오프라인 활동이 제약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스펙이었다. 사촌언니 두명과 한 장관의 딸은 모두 한살씩 차이가 나서 대입 준비 기간이 겹쳐 대입 스펙 품앗이가 가능했다. 실제로 진씨의 두 딸은 지난해와 올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잇따라 진학했다.
진씨는 이러한 스펙 쌓기를 ‘비즈니스’로까지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는 진씨가 논문을 함께 작성한 학생들에게 참가비를 받았다거나 ‘팬데믹타임스’에 참여한 학생에게 누리집 운영비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온다.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한인 학부모는 지인을 통해 <한겨레>에 “진씨가 논문을 함께 쓰자면서 참가비로 2천달러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도 전했다. 학부모들에게는 ‘자녀가 공부를 잘하니 깎아주겠다’ ‘두개 이상을 함께 하니 할인해주겠다’고 말하며 다른 학부모에게 비용을 말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돈은 주로 온라인 지불 시스템인 페이팔로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가 한 장관 딸과 사촌의 ‘스펙공동체’ 의혹을 보도하자 학부모들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말을 맞추자’는 취지의 요구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5월 초중순께 딸과 함께 활동했던 학생의 학부모에게 진씨가 보낸 문자를 <한겨레>는 입수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지. 일단 지인분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고액 컨설팅을 했냐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론되는 분들은 다 같이 말을 맞추었으면 합니다. 멘토 비용을 모두 돌려드릴 예정이니 제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게 노이즈(소음)가 가장 없을 듯합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진씨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만 자녀들 때문에 항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씨가 학원 주소지를 무단 사용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는 ‘북웜스에세이’라는 에스에이티·수학·영어 학원을 한인 업체 주소록 등에 등록했는데, 이 학원 주소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입시컨설팅 학원이었다. 이 학원 대표는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진씨가) 허락과 동의도 없이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회사 주소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주소 무단 사용이 재발할 경우 법적 대응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진씨가 두 딸과 한 장관 딸의 스펙 쌓기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여러 학생들에 대한 입시컨설팅을 하면서 대필이나 표절, 탈세 등의 불법적인 활동을 하진 않았는지 등 의문이 커지고 있지만, 진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진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이런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지만, 진씨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새너제이/김지은 기자,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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