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그 학생들은 왜 청소노동자 시위를 ‘소음’이라 했을까

등록 2022-07-15 19:00수정 2022-07-16 02:39

[한겨레S] 이라영의 비평 _ 연대 청소노동자 시위 고소

학습권 대 노동권 구도는 허구
모두 동등한 권리 가진 시민
청소노동자 시위 고소한 학생들
‘관계의 철학’ 되돌아볼 때
7월6일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쪽의 노동자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7월6일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쪽의 노동자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연세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위해 하루 한시간씩 시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학습권을 침해받았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지금 연세대 학생들을 대표한다고 보긴 어렵다. 3000여명의 학생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서명을 통해 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일부 학생의 목소리일지라도 그들이 노동자들의 집회를 소송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당대의 노동과 당대의 공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노동자들의 시위를 비난하는 한 학생은 “교수님 말씀이 안 들릴 정도의 소음”이었다고 했다. 꽤 흥미로운 표현이었다. 말씀을 침범하는 소음. 강의실 안 교수의 발언은 ‘말씀’이지만 강의실 밖 노동자들의 발언은 ‘소음’이다. 그는 이 소음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라 규정했다.

 연대보다 분리, 이 사회의 민낯

일부 학생들의 이런 돌출행동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2019년 2월 서울대 노동자 120여명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난방을 껐을 때 일부에서는 유독 도서관만은 제외해줄 것을 요구했었다. 당시에도 똑같이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들었다. 이 사안에 대하여 잊지 못할 칼럼은 <조선일보>에 실린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글이다. 그는 이 칼럼에서 도서관 난방 중단을 “응급실 폐쇄”로 비유하며 “인재들의 공부와 연구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는 금기”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인재’이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를 ‘이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듯이, 이번에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한 학생도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먹고사는 청소노동자”라고 말했다. 다른 파업보다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파업은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대보다는 분리를, 평등보다는 위계를 갈구한다.

한편, “우리는 똑같은 학교에서 일하니까 같은 학교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노동자의 발언은 정확하게 일레인 스캐리가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에서 강조한 “모든 사람의 관계의 대칭”이라는 개념을 떠오르게 한다. 나의 위치, 나의 능력, 나의 억울함에 갇혀서 사회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을 놓쳐버린 상태야말로 이 사회의 문제이다.

노동자의 시위가 소음이 되는 이유는 소리의 데시벨 때문이 아니다. 소리의 존재 자체를 소음 취급한다. 작년에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있었지만, 2019년에도 한여름 창문 없는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었다. 대학 내 노동자들의 투쟁은 날짜만 바꿔도 될 정도로 계속 반복 중이다. 사망과 시위가 반복되는 동안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언제나 동일하다. 현재 연세대 노동자들은 시급 440원 인상과 샤워시설 확충 등 매우 기본적인 요구를 위해 시위한다. 한여름에 샤워시설 없이 체육관을 운영한다면 당연히 지탄받을 것이다. 그런데 청소노동자들의 샤워시설 확충 요구는 왜 어떤 이들에게 문제가 될까.

어떤 오보는 고의적이며 그 고의적 시각이 어느새 보편적 시각으로 자리 잡는다. 시위가 소음이 아니라 시위를 전하는 방식이 소음인 셈이다. 쿠팡 노동자들은 냉방시설 확충 등 기본적인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한다. 최근 몇몇 언론은 시위 중인 쿠팡 노동자들이 커피 마시는 장면을 졸지에 ‘술파티’로 보도했다. 오보가 확산되고 진실이 드러나자 정정보도나 사과도 없이 기사를 삭제했다. 그러나 오보는 이미 일파만파 퍼지고, 진실의 전달 속도는 늘 오보보다 느리다. 오보는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만 진실은 알고 싶지 않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오보는 그래서 끈질긴 생명력을 얻는다.

언론의 적극적인 오보 생산에 대해 금속노조는 “예정된 오보”, “술병이어야만 한다는 집념이 만든 ‘의도된 오보’”라고 논평을 냈다. 예정되고 의도된 오보, 쿠팡 노동자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필요 없고, 그저 그들이 대낮에 술판을 벌이는 불한당인 양 여길 수 있으면 그뿐이다. 그렇게 캔커피는 캔맥주로 읽힌다. 설사 대낮에 맥주를 마셨다고 한들, 그것은 결코 ‘맥주 회동’이 될 수 없으며 ‘대낮 술판’으로 불려야만 한다.

노동자의 집회는 종종 이 ‘예정된 오보’의 운명에 처한다. 2013년 희망버스 시위에 대한 보도에서 많은 언론이 폭력을 강조하기 위해 시위대가 사용한 ‘무기’를 언급했다. “쇠파이프 난동”(<한국경제>), “죽봉과 쇠파이프”(<동아일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대”(<중앙일보>) 등으로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시위를 묘사했다. 그러나 어떤 사진에서도 쇠파이프는 보이지 않았으며 희망버스 기획단 측에서는 쇠파이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기획단에 따르면 당시에 현대차 아산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운명을 달리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만장용 대나무가 있었다. 만장용 대나무는 ‘죽봉’을 넘어 ‘쇠파이프’가 된 것이다. 커피가 술이어야만 하듯이, 대나무는 쇠파이프여야만 한다.

 소음이 말씀이 될 때까지

우리의 일상은 이 ‘의도된 오보’처럼 타자의 고통에 대한 방음벽으로 가득하다. 학습권은 그 방음벽 안에서 듣지 않을 권리가 아니다. 강의실에서 울리는 교수님 말씀과 강의실 밖에서 울리는 청소노동자의 소음이 위계적이 아닌 상호대칭적 관계가 될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학습권 대 노동권이라는 구도는 허구다. 학생과 노동자의 권리가 마치 충돌하는 듯한 그림을 그리지만 사실은 모두 연대를 방해하고 싶은 자본이 부리는 농간이 아닐까.

스캐리가 말한 “모든 사람의 관계의 대칭”을 풀어보자면, 이는 평등을 위한 연대다. 영어 단어 ‘페어’(fair)는 ‘공정한’ 외에도 ‘용모의 사랑스러움’, 나아가 ‘박람회’라는 뜻이 있다. 흔히 박람회는 존재를 동등하게 보여주는 공정한 무대로 작용해 작은 기업에도 비교적 효과적으로 홍보 기회를 제공한다. 집회 현장은 바로 이 박람회처럼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시민을 드러내는 공정한 무대이다. 투쟁 소음이 말씀이 될 때까지, 공정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이 필요하다.

이라영 _ 예술사회학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2020) <타락한 저항>(2019) 등의 저자.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평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비평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2심 법원도 “윤 대통령 한식당 450만원 지출비 공개하라” 1.

2심 법원도 “윤 대통령 한식당 450만원 지출비 공개하라”

말 한마디로…21대 국회 연금개혁 “맥 풀리게 한” 윤 대통령 2.

말 한마디로…21대 국회 연금개혁 “맥 풀리게 한” 윤 대통령

MBC가 아니라 KBS ‘파우치’ 대담이 선거참패 불렀다 3.

MBC가 아니라 KBS ‘파우치’ 대담이 선거참패 불렀다

검찰, 이정섭 검사 자택 압수수색…포렌식 업체도 4.

검찰, 이정섭 검사 자택 압수수색…포렌식 업체도

‘아홉 살 때 교통사고’ 아빠가 진 빚…자녀가 갚아야 한다, 서른 넘으면 5.

‘아홉 살 때 교통사고’ 아빠가 진 빚…자녀가 갚아야 한다, 서른 넘으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