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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반지하 ‘장애인 가족’ 참사…남은 어머니는 대성통곡했다

등록 2022-08-09 17:54수정 2022-08-10 10:17

갑자기 불어난 물 피하지 못해
가족 중 1명은 지적장애인
동작구에서도 반지하 거주 50대 여성 숨져
“침수 우려 반지하 주택 대책 마련해야”
9일 오전 9시께 주민 전예성(52)씨가 지난 8일 밤 일가족 구조 시도 당시 차올라있던 물의 높이를 우산으로 가리키고 있다. 고병찬 기자
9일 오전 9시께 주민 전예성(52)씨가 지난 8일 밤 일가족 구조 시도 당시 차올라있던 물의 높이를 우산으로 가리키고 있다. 고병찬 기자

“딸들을 구출하고 옆집에도 사람이 갇혀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2층 주민인 30대 남성과 옆집 창문을 뜯으려 했는데… 이미 물이 차올라 수압 탓에 힘으로 뜯을 수가 없었어요. 한명만 더 있었어도 구할 수 있었을 텐데…물이 이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어요.”

9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 ㅈ빌라 앞에서 만난 주민 전예성(52)씨는 이웃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쳤다. 그는 전날 밤 9시께 밖에 있다가 ‘창문으로 빗물이 쏟아진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집으로 달려와 반지하 집 창문을 깨고 20대 딸 3명을 구출했다. 바로 옆집 이웃인 40대 자매와 10대 여아 한명이 갇혀 있다는 소리를 듣고 구하려 진땀을 뺐지만 끝내 구하지 못했다.

이날 0시26분께 소방관들이 창문을 깨고 전씨 옆집에 살던 언니 ㄱ(47)씨와 동생 ㄴ(46)씨 그리고 ㄴ씨의 딸(13)을 끌어냈지만 모두 숨져 있었다. ㄱ씨는 지적장애인(발달장애인)으로 주민센터에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록이 돼 있었다. 이들과 함께 살던 어머니 ㄷ(73)씨는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탓에 화를 피했다. 해당 빌라 주민(73)은 “ㄷ씨는 몸이 아파 이전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걸로 안다. 아내가 ㄷ씨에게 사고 소식을 전하니 (ㄷ씨가) 대성통곡을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8일 밤 9시께부터 이 일대에 갑자기 불어난 물이 반지하를 덮쳤고 이들은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밤 9시께부터 이들의 지인과 인근 주민들이 경찰과 소방서에 구조 신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대 폭주한 폭우 신고 탓에 경찰과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신고 30여분이 지난 후였다.

관악경찰서는 “저녁 8시59분 신고 접수 후 지구대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밤 9시30분께였다. 지구대에 이미 신고가 40여건 이상 몰려 있어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관악소방서도 “밤 9시2분께 신고를 접수했으나 이미 모든 인력이 출동해있는 상황이라 주변 소방서에 지원 요청을 해서, 밤 9시46분께에 현장에 최초 도착했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으나 물에 잠긴 현관문을 열기 위한 장비 등이 부족해 시간이 걸렸다. 결국 문을 열지 못해 창문을 깼다”고 했다.

8일 밤 10시10분께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반지하 집이 침수돼 나오지 못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동작소방서는 “저녁 8시27분께 집에 물이 차 언니가 갇혀있다는 여동생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밤 10시10분께 주검을 수습했다"며 “당시 동작구 관내 일대가 침수로 인해 이동이 어려워 현장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숨진 여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있었다.

지난 8일 밤 일가족이 수마를 피하지 못해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에 9일 오전 9시께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다. 고병찬 기자.
지난 8일 밤 일가족이 수마를 피하지 못해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에 9일 오전 9시께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다. 고병찬 기자.

이번 참사로 반지하 건물의 침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 통계를 보면 ,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지난 2020년 기준 전국 32만7320가구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인해 반지하 상당수가 침수 피해를 입자 저지대 주거용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으나 여전히 서울시에만 20만849가구(2020년 기준)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특히 관악구는 2만113가구로 서울시에서 반지하 가구 수가 가장 많다.

반지하 침수 예방 대책으로 차수판과 하수 역류방지장치 등을 개인이 신청하면 설치해주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로 지금과 같은 재난이 잦아질 것이라고 예견되는 만큼 침수 피해 예방을 비롯해 반지하 가구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반지하 주택은 물 빠짐,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이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아 지금까지 침수 피해에 대한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번 참사도 어찌 보면 정부와 지자체가 지속해서 일어난 반지하 침수 피해를 외면해 발생한 ‘예견된 참사’라고 할 수 있다”며 “지하 거주 가구에 대한 임대주택 공급을 현실화하고, 자가 소유 주택에 대해선 침수 피해 예방 등을 위한 리모델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지하 공간에서 주거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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