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저녁 서울에 내린 폭우로 반지하에 갇혀 사망한 홍아무개씨 가족을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아픈 어머니와 장애를 가진 언니, 13살 난 딸을 돌보면서 동료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밝게 일해온 여성 노동자. 지난 8일 서울에 내린 폭우로 관악구 반지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언니·딸과 숨진 홍아무개(46)씨를 동료들은 이렇게 기억했다.
11일 저녁 7시3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 정문 앞 인도에 200여명의 시민들이 홍씨 가족을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열기 위해 모였다. 민주노총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전임자였던 홍씨의 민주노총 동료들, 홍씨가 회원이었던 겨레하나 소속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인도 위를 메웠다. 추모문화제 내내 참석자들 사이에선 꾹 눌러온 울음이 터져 나왔다. 홍씨 가족의 입관식을 마치고 문화제에 참석한 홍씨의 노조 동료들은 들썩이는 서로의 어깨를 번갈아가며 다독였다.
홍씨의 동료들은 참혹했던 고인의 마지막을 안타까워했다. 홍씨는 수압 때문에 현관문을 열지 못했고, 통화량 폭주로 119 신고를 하지 못하자 엄마와 노조 동료들에게 도와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김성원 부루벨코리아지부장은 “그날 거기 달려가 물이 차올라 있는 곳에서 창문을 뜯어내고 어떻게든 한번 구해보려고 손을 집어넣었는데 물에 잠긴 천장은 10cm 정도밖에 안 남아 있었다”며 “그때 내가 이 사람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언론이 반지하 얘기하면서 홍씨의 삶이 궁핍했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홍 부장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풍족하게 살았다”며 “우리는 그 얼굴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은 이날 노조를 통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였지만 사고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아직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유감을 감출 수 없다”며 “우리에게 일어난 슬픔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 더 안전한 사회가 되길 힘을 보태달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장애와 돌봄, 주거와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홍씨를 위해서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기사를 찾아봐도 이번 재해로 희생된 발달장애인의 서사는 찾을 수 없고, 장애를 가진 가족을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며 “국가와 사회가 책무를 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홍씨가 반지하에 살겠다고 결심할 때 결코 죽음을 감당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반지하에 살아도 허가를 내놓고 사고 이후 반지하에 남는 사람에게 어떤 주택을 제공할 것인지 일언반구 없이 없애겠다는 얘기만 한다”고 했다. 이어 “홍씨를 주거 불평등을 고발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과제를 넘겨준 동지로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살자 우리. 살아서 해야 될 일이 있잖아. 그러니 살자 제발.” 민중가수 지민주씨가 장례식장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11일 저녁 서울에 내린 폭우로 반지하에 갇혀 사망한 홍아무개씨 가족을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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