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국정원장(왼쪽),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 서욱 전 국방부 장관(오른쪽).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상대로 동시다발 압수수색을 벌였다. 한 달 넘게 진행된 공개수사를 통해 참고인 조사 등 혐의 사실 확인에 공을 들인 검찰이, 이번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 고위급 인사 수사에 속도를 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은 16일 오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각종 의사 결정에 관여한 이들의 집과 사무실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인 장소는 모두 10여곳으로, 검찰이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이들의 근무지인 해경, 국방부 산하 부대 등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었던 고 이대준씨가 북한 해역에서 피살됐을 당시 국방부와 해경 등이 ‘이씨가 월북했다’고 발표한 경위 등을 수사하고 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달 6일 박 전 원장이 이 사건 관련 첩보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했다며 국가정보원법(직권남용죄)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훈 전 실장과 서욱 전 장관 또한 지난달 8일 이씨 유족들로부터 직권남용과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검찰은 국정원 고발 1주일 뒤인 지난달 13일 국정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압수수색 형태로 넘겨받으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해 김규현 국정원장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직 국정원장 고발을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선 이날 동시에 진행된 압수수색을 두고 윗선 수사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사그러든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국정원은 직전 기관장이었던 박 전 원장 등을 고발하며 이례적으로 구체적 혐의까지 공개한 바 있다. 한 달 남짓 공개수사가 진행된 상황에서 이뤄진 동시다발 압수수색은 증거 확보 필요성보다는 윗선 수사로 넘어가기 위한 절차적 명분 쌓기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는 “휴대전화 등에 핵심적인 증거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겠느냐. 이미 관계기관 자료를 받고 참고인 조사를 상당히 진행한 상황이라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윗선 수사를 본격화한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 박 전 원장은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 직후 <와이티엔(YTN)>에 출연해 검찰 압수수색이 30분 만에 끝났다고 밝히면서 “(검찰이) 휴대전화와 일정 등이 적혀있는 수첩 5권을 가져갔다. 국정원 서버 삭제를 지시했는데, 왜 집을 압수수색하느냐. 겁주고 망신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박 전 원장과 서 전 실장 등 주요 관계자를 불러 월북 판단 과정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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