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청년 부채’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비롯한 ‘도덕적 해이’부터 자산도 직업도 불안정한 ‘세대의 비극’까지 청년 부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사실도 있다. 빚이 임계에 달한 2030의 비율이 11.3%로 전 세대 평균(6.3%)의 두배에 가깝다는 통계, 그리고 오늘의 불안은 내일 역시 위태롭게 한다는 경험칙이다.
시각이 갈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안을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 청년 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겨레> 기자가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에서 3주일 동안 일했다. 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빚을 진 채 살아가는 16명의 청년을 심층 인터뷰했다. 청년 부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20~30대에 진 빚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중장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겨레>는 청년 부채 문제를 해부한 ‘저당 잡힌 미래, 청년의 빚’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② 연체의 늪에 빠진 이유
③ 청년빚의 다양한 얼굴
④ 대출이 제일 쉬웠어요
“죄송하지만, 아침에만 전화가 가능하신 걸까요? 전화하는 건 괜찮은데, 제가 밤새 일을 해가지고…. 오후에 해주시면 안 될까 해서요.”
기자가 대부업체에서 통화한 청년들은 오전 10시에도, 때론 점심시간이 지나서도 자다 깬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기 일쑤였다. 30대 남성 ㄱ씨도 그랬다. 예의를 지키는 깍듯한 말투에서 피로의 무게가 느껴졌다. 괜한 죄책감에 대출 이자 납입일(약정일)이 내일이라는 짧은 안내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고객 메모에 오전 안내 전화를 거부했다는 내용을 추가하다가 그가 2년 반 동안 직장을 네번 바꾸었고, 음식점을 여러곳 옮기며 주방을 맡거나 배달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은 야간 배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됐다. ㄱ씨는 그렇게 번 돈으로 대부업체에서 빌린 이자를 갚고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연체가 잦은 청년 채무자들의 공통분모다. 배달,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 일용직을 끊임없이 순환하기에 직장이 몇달 만에 바뀌곤 한다. 사람들이 꺼려서 구하기 쉬운 야간 노동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아침에 건 전화를 받지 못한 또 다른 청년은 “이자를 내려고 밤에 노래방에서 일하느라 늦게까지 잤다”고 말했다. 대부업체 직원들이 참고용으로 써놓은 추심 고객 메모에는 ‘다 죽어간다’ ‘피곤한 듯’ 같은 표현으로 전화를 받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식했다. 이렇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어림짐작이 됐다.
아예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매일 받는 명단에서 20~30대가 10명 중 5명이라면 무직자 비율은 그 5명 중 2명꼴이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4년 전 500만원가량 빚을 진 30대 초반의 ㄴ씨는 원금을 거의 갚지 못했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는 동안 그는 실업과 취업을 여러차례 오갔다. 2만원 남짓의 이자를 내면 연체를 면할 수 있는 그는 불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오늘 안에만 내면 연체는 아닌 거죠?” 비단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6개월 이상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장기 실업자는 12만8천명이다.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 가운데 절반인 6만5천명이 20~30대였다.
불안정한 노동은 불안정한 소득을 말한다. 언제, 얼마를 벌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약정일에 이자나 원금을 갚을 수 있을지를 운에 맡겨야 한다. 청년들은 대부분 운이 나쁜 축에 속했다. 벌이가 불안정하면 연체가 잦다는 걸 대부업체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 때문에 대부업체는 채무자들의 취업 상태를 수시로 확인한다. 회사는 ‘약정일 안내 전화를 돌릴 때 집과 직장 정보에 변동이 없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상담 직원에게 거듭 내렸다. “연체가 되지 않은 고객에게 직장 정보를 계속 물어보면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항변은 먹히지 않았다.
윽박지르거나 강요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제한된 대부업체는 채무자의 거주지와 취업 상황, 노동 의지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부채 상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채무자가 ‘배달 대행을 한다’고 말하면 포털사이트 ‘로드뷰’(실제 해당 주소 길거리 사진을 보여주는 인터넷 서비스)로 해당 주소지에 실제 배달업체가 있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이직이나 실직은 대부업체 직원의 확인보다 빨랐다. 연체가 됐는데도 연락이 닿지 않아 직장으로 전화를 걸면 “이미 두 달 전 퇴사한 분이다” “출근 안 한다” “그런 사람 없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청년들이 빚 갚기를 회피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결되지 않은 신호음 너머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직장을 잃은 뒤 한동안 추심 전화를 피하던 20대 여성 ㄷ씨는 취업한 뒤 먼저 대부업체에 연락해왔다. “그동안 돈을 구하기 힘들어서 전화를 못 받았는데, 이제 벌이가 생겨서 전화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가게 문을 닫아야 했던 30대 자영업자 ㄹ씨는 한동안 연체를 하다가 장사를 접고 계약직 사원으로 일을 시작한 뒤 연체를 멈췄다.
배우자에게 직업이 있으면 돈을 빌려주는 ‘주부 대출’을 받은 여성들은 빚을 갚으려고 일터로 향했다. 100만원의 주부 대출을 받은 20대 후반 ㅁ씨는 여러 직장을 옮겨 다녔는데 새 직장을 구할 때마다 어김없이 대부업체에 전화해 구직 사실을 알렸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회사에서 받은 상품권을 팔거나, 친구한테서 빌리거나, 보육수당으로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부채에 매인 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일은 어려워 보였다. 30대 청년인 ㅂ씨는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서 계속 연체를 했다. 결국 지난해부터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의 직장 기록은 수시로 바뀌었다. “코로나로 오늘 일이 취소돼 이자를 마련하지 못했다” “내일 드리겠다” “직장이 구해지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새로 구하려고 한다”…. ㅂ씨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위해 준비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빚진 청년들은 빚진 중년이 되곤 한다. 11년 전 30대였던 ㅅ씨는 300만원을 대출받아 쉰살에 가까워진 지금까지 이자만 1천만원 넘게 냈다. 운전을 하다가 월급이 밀리면서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여전히 원금 300만원의 30%도 갚지 못했다. 그는 11년 전 처음 돈을 빌릴 때도 10곳 정도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였다.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기자가 일한 대부업체는 10단계로 나뉜 신용등급 중 5~7등급을 상대로 주로 대출했다. 8~10등급은 대출 승인이 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루 평균 600명이 넘는 사람이 대출 신청을 하는데, 이 중 실제 승인이 나서 송금되는 경우는 10% 남짓이다. 법정 최고금리가 2002년 66%에서 20%까지 낮아지면서 대부업체도 상환 가능성을 엄격하게 보고 있다. 특히 아직 충분한 신용을 쌓지 못하고 담보마저 거의 없는 청년들이 돈을 빌리기란 쉽지 않다.
매일 대출을 신청하는 600여명 중 거절당한 540여명이 갈 수 있는 곳은 뻔하다. 연 이자를 3천%까지 받는 불법사금융이다. 대부업체 교육담당자는 “서민들이 (은행의) 신용대출이 나오지 않을 때 대부업체 쪽으로 어쩔 수 없이 내려오지만 최소한 여기서 멈춰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해 개인 사채까지 써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라고 했다. 이자가 더 높은 사금융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는 순간, 부채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요원해진다.
지난여름 기자가 대부업체에서 3주간 일하며 도저히 끊어낼 수 없을 것 같은 부채의 악순환을 벗어난 사례는 몇 건에 그쳤다. 파산이나 개인회생제도,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등을 신청한 경우다. 이자 등을 일부 감면해주는 대신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갚겠다는 약속을 받고 추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근무 마지막 날, 통화한 30대 ㅇ씨는 자신이 개인회생을 신청한 게 채권자들에게 달가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죄송한데 사실 개인회생을 신청했어요. 변호사님이 대출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쩔쩔매며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빚을 진 순간부터, 벗어날 때까지 그 단어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4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ㅇ씨는 올해 초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300만원이 더 필요했다. 일용직으로 번 돈의 3분의 1을 이자를 갚는 데 써야 했지만 대출은 승인됐다. 한달 뒤 추가 대출 신청이 들어왔다. 빚은 1500만원 가까이 늘어 있었다. 대부업체는 그가 개인회생을 신청할 가능성을 96%라고 계산했다. 그것이 그가 부채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대부업계에서는 파산이나 개인회생으로 빚에서 탈출하는 행위를 가리켜 ‘만세를 부른다’고 한다. ‘만세를 부른’ 채무자들에게는 더 이상 추심을 할 수 없다는 동료 직원의 설명을 듣다가 물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크지 않나요?” 10년을 넘게 빚을 받아내는 일을 해온 그는 멈칫했다. 잠시 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적어도 인생을 다시 살아보겠다는 거니까요. 빚에서 허덕이다 인생을 포기해버리는 사람들보다는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게 자신의 인생에 책임 있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 어떻게 취재했나?
<한겨레> 기자는 법률 검토를 받아 대부업체에 취업해 1주일 교육을 거쳐 2주일간 추심 업무를 맡았다.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청년 부채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대출 시장에서 청년 채무자의 처지를 살펴보는 것이 당사자 취재와는 다른 구조적 측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대부업체에서 받은 임금은 청년 부채 해결을 돕는 단체에 전액 후원한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