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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살 때 대출이 너무 쉬웠어요, 지금은 200번은 고민할 텐데”

등록 2022-09-21 05:00수정 2022-09-21 13:56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청년이 빚지는 이유: 소비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청년의 빚은 다양한 모양을 가졌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갑작스러운 사고나 범죄 때문에, 때론 투자를 위해서 청년들은 대출을 받았다. <한겨레>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16명의 빚진 청년을 8월5일부터 26일까지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은 19~36살로 서울·인천·청주·울산·광주 등에 거주했다. <한겨레>는 두차례에 걸쳐 청년의 빚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했는지를 살핀다. 첫번째 기사에서는 생계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빚진 청년들을 만났다. 두번째는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나 소비 때문에 대출을 받은 청년들의 이야기다.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② 연체의 늪에 빠진 이유

③ 청년빚의 다양한 얼굴

④ 대출이 제일 쉬웠어요

“대출이 너무 쉬웠어요.”

<한겨레>가 8월5일부터 26일까지 만난 16명의 청년(19~36살) 중에는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로 주식이나 암호화폐(가상자산) 시장에 발을 들인 경우나 넉넉한 소비를 위해 대출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금융 사정에 밝지 않아 20% 안팎의 고금리 대출을 큰 고민 없이 받기도 했다. 대출은 쉬워도 갚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돈을 빌릴 때 그들은 몰랐다. 돈을 빌려 빚의 수렁에 빠진 청년들은 입을 모아 “후회한다”고 했다.

홍아무개(22)씨는 2019년 19살 생일이 지나자마자, 인터넷 대출 중개업자를 통해 100만원을 빌렸다. 친구와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였다. 인터넷에 ‘20살 여성 무직자 대출’이라고 검색해 대출 중개인을 만났다. 그는 홍씨한테 필요한 서류를 제출받아 대신 은행에 서류를 보내 대출 심사를 받아줬다. 첫 빚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갚았다. 대출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편리한 것’이었다.

20살 때 화장품 공장에 취업을 했지만 고된 일에 안 그래도 약하던 몸이 삐거덕거렸다. 발목과 손목에 물혹이 생겨 쉬어야 했다. 돈이 또 필요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까 고민하다 마음을 돌렸다. “대출이 더 가능한데 왜 100만원만 빌려요?” 첫 대출 때 들었던 대출 중개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출 중개업자는 금리가 20%가 넘는 2금융권 대출만 소개했다. 사회 초년생인 홍씨는 대출 이자가 다 그 정도인 줄 알았다. 실업이 길어지자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홍씨는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어느새 빚은 7000만원까지 늘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채업자가 가족과 친구들의 번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제일 두려웠어요. 그냥 구렁텅이로 빠져드는구나 싶었죠.”

비대면 은행 대출 증가 원인

2015년 금융기관의 비대면 본인 인증이 도입되고 인터넷은행 설립이 허가됐다. 정보기술(IT)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대출이 한층 편리해졌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최근 청년층의 가계대출 현황 및 평가’(2021년)를 보면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핀테크 혁신 등에 따라 모바일 기반 비대면 신용대출 영업경쟁이 심화됐다”며 “(이런 흐름이) 청년층의 대출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청년층을 주고객층으로 설정하고 신용대출 영업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도 시장점유율이 하락하자 대출 한도 및 금리 우대 혜택을 비대면 상품에 집중했다. 그 결과 전체 은행대출 증가액에서 전자금융 경로를 통한 대출 증가액 비중이 2019년 28.7%에서 2020년 1~9월 34.2%로 상승했다.

“인터넷 간편 신청 한 번에, 혹은 전화 한 통이면 대출이 나왔어요.”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취업한 김아무개(27)씨는 빚이 포화 상태였지만 추가 대출이 어렵지 않았다. 19살 때 “카드를 만들면 현금을 주겠다”는 영업사원의 권유로 그는 생애 첫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40만원씩 석 달을 쓴다는 조건이었다.​ 씀씀이가 커져 카드값을 못 내면 다음달로 이월하는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것도 한계에 다다르자 카드론을 추가했다. 그 카드론을 갚기 위해 캐피털 업체의 16% 금리 신용대출을 받았다. 자신이 매달 150만원이나 빚 갚는 데 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의 빚은 2800만원. “학교에서 돈 관리 하는 법을 알려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게 아쉬워요. 지금 대출을 받는다고 하면 200번은 고민할 거예요.”

투자하려 대출받다 빚 갚으려 대출

소비 목적뿐 아니라 투자나 도박으로 빚을 진 청년들도 있다. 자신의 소득만으로 집을 살 수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여긴 이들은 투자에 나섰다.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다, 결국 대출을 갚기 위해 대출을 받는 악순환에 빠졌다.

김아무개(25)씨는 평소 주식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4년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두고 천만원의 목돈을 퇴직금으로 받자 돈을 불리고 싶은 마음에 주식 투자에 나섰다. 퇴직금은 200만원만 남기고 금방 사라졌다. 김씨는 새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대출을 받아 다시 주식에 손댔다. 1년 만에 8000만원의 빚이 생겼다. 그는 이제 빚을 갚기 위해 대출을 받고 있다. “원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는데도 손실을 만회하고 싶다는 심리 때문에 대출을 무리하게 받았어요.” 김씨는 자신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빚 탕감보다 대출 규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투자는 자기 책임이니까요. 차라리 무분별한 투자에 쓰려고 하는 대출을 규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허아무개(33)씨는 대학교 3학년 때 인터넷 토토 사이트에 우연히 들어가 5000원을 걸고 10만원을 땄다. 그 뒤로 도박에 빠졌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직장 생활로 대출이 가능해지자 다시 도박에 손을 댔다. 빚진 돈은 7000만원. 도박상담센터와 친구의 도움으로 수렁을 빠져나왔다. “무작정 청년의 빚을 갚아준다고 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없애야 해요. 원인이 그대로면 1~2년이면 빚이 다시 생겨요.”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과도한 빚에서 벗어나는 법

과도한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법원의 회생 및 파산제도 등이 있다. 신용회복위에서 진행하는 채무조정은 연체 기간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 연체가 예상되거나 한 달 이내 단기일 경우 ‘신속채무조정’으로 상환기간 연장이나 유예를 받을 수 있다. 연체가 3개월 미만이면 이자율 조정을 하는 ‘프리워크아웃’으로 연체 장기화를 방지한다. 그 이상이 되면 ‘개인워크아웃’이다. 금융기관 채무가 3개월 이상 연체됐고 총 채무액이 15억원을 넘지 않을 경우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청 다음날부터 추심이 중단된다. 확정되면 연체 이자가 감면되고 채무자의 재산과 수입 등을 종합한 상환 능력에 따라 원금도 일부 탕감 가능하다.

법원에서 진행하는 채무조정 제도도 있다. 바로 ‘개인회생’과 ‘파산면책’이다. 개인회생은 3년 이내에 채권자에게 분할변제를 하는 조건으로 남은 채무 일부를 감면 받는다. 변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있는 경우 신청이 가능하다. 반면 파산은 채무자가 모든 재산으로도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가능하다. 면책 절차를 통해 남은 채무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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