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년 부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주변에서 위기를 감지하는 게 쉽지 않다. 빚이 있다는 사실을 청년들이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1인 가구 등 홀로 지내는 경우도 많아 곪을 대로 곪은 뒤에야 터져 나오곤 한다. 전문가들은 청년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빚진 청년들을 우선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원 서울시복지재단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관은 “청년들은 빚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잘 알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빚의 악순환 속에서 손 놓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갚으려 해도 빚에 따라 대응 시나리오가 다른데 그걸 모르기에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최악까지 치닫는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부채를 숨기는 이유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사회가 빚진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다 보니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내몰린다”며 “빚은 살아가면서 겪는 하나의 일일 뿐인데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사태까지 일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소장 역시 “빚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알 방법이 없다”며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래의 경제를 책임질 청년이 부채로 삶을 포기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구구조 불균형으로 청년의 수는 적은데 기성세대가 노령인구가 됐을 때 복지 재원은 이들 세대가 부담해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빚진 청년들을 구제해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기성세대에게도 이익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영섭 소장은 “청년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해야 소득이 발생하고, 세금도 걷어서 사회적 선순환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짚었다.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은 이미 있다. 법원은 개인회생·파산 제도를, 신용회복위원회는 워크아웃 제도를 운용한다. 하지만 청년에게는 그 문턱이 높다. 안창현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이사(변호사)는 “법원에선 청년이 파산을 신청해도 면책을 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젊으니까 일해서 갚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회생은 최저생계비 수준의 급여가 고정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완료하기 어렵다. 결국 청년들은 불법 사금융을 찾거나 주식, 코인, 도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에서 받은 올해 1~6월 개인회생 및 파산 신청 현황을 보면, 20대의 파산 신청은 330건, 30대는 1500건에 그쳤다. 반면 40대는 4224건, 50대는 6753건으로 집계됐다.
채권자와 협의해 채무조정을 하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 제도도 청년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받은 지난해 1~6월 개인워크아웃 대상자 현황을 보면, 40대는 1만2397명, 50대는 1만1386명인 반면 20대는 4527명, 30대는 8793명에 그쳤다. 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은 “금융기관들이 20~30대 채무조정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언제든 청년은 일해서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다양한 채무조정과 금융상담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수민 이사장은 “청년들의 재무관리 상담과 신용회복 지원 등을 하는 ‘광주청년드림은행’과 같은 금융안전망이 필요하다”며 “상담과 지원 사례 분석을 통해 새로운 청년 부채 대책을 발굴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금융 교육이나 상담 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현재 정규교육 과정에서는 신용카드를 관리하는 법이나 ‘건강한 대출’을 받는 법을 배우기 힘들다. 유순덕 상임이사는 “금융과 신용관리 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들이 사회에 나오면 혼돈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재원 상담관은 “성인이 되면 바로 맞닥뜨리는 것이 금융시장인데 청년들이 관련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빚의 족쇄를 경험한 청년 16명과 중장년 5명이 <한겨레> 인터뷰에서 공통으로 언급한 부분도 교육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 수업에서 한달 비용을 관리하는 법 같은 것을 필수적으로 알려줬다면….” “잃어봐야 안다는 건 너무 비용이 큰 것 같아요.” 알았다면 가지 않았을 길을 먼저 걸었던 이들은 다른 청년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나서주길 바랐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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