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면, 그때 오세요” 스토킹 살인 직감할 때 국가가 말했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라’고 피해자들을 설득하고 연대해 왔던 내 입장에서 사법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고소를 취하하려는 그들에게 그래도 시스템을 신뢰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 14일 저녁 8시56분께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을 순찰 중이던 서울교통공사 여성 역무원 ㄱ(28)씨가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인 남성 전아무개(31)씨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던 전씨가 법원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질렀다. 일방적인 전화, 불법촬영, 협박 등 강력범죄 전조가 수년간 계속됐지만, 한차례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뒤로는 가해자 분리 등 피해자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부터 ‘재판 방청 연대’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성범죄를 판단하는 사법부를 감시해온 활동가 연대자D가 긴급 기고문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성범죄 피해와 스토킹 피해를 연달아 겪었다. 2010년 아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고소했지만 가해자가 오히려 맞고소하는 ‘보복 소송’을 경험했다. 민·형사 소송이 마무리되기까지 4년 동안 싸운 그는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삶을 이어왔다. 이 글에서는 연대자D는 법률상 용어인 ‘보복살인’ ‘보복 협박’을 쓴다. 편집자 주

“당하면 오세요”…그때부터 유서를 품고 다녔다

2013년, 출소한 가해자는 정부 지원의 출소자 지원프로그램을 이수하며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한편, 일베 등에는 나를 찾아내 죽이겠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성폭력 사건으로 수사 및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스토킹했던 가해자는 각각 징역형(실형·법정구속)과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만기출소 후 ‘보복 협박’을 지속했다. 주소 이전 등 피해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음에도 가해자의 협박은 실질적으로 내 일상을 잠식했고,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나는 수사기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때 들은 말이 있다. “당하면 오세요.”

가해자의 패턴상 이번에 ‘당하면’ 나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하면’ 올 수 있겠냐며, 피해자 보호에 무관심한 수사기관을 붙들고 얘기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이 없고,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피해가 없는 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내가 유서를 품에 안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피해생존자에서 연대자로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그 기간,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을 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겨우 만들어졌다.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각종 제도도 정비돼 갔다. 그런데 또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을 들어야 했다. 공적 시스템을 신뢰한 그들을 이 사회는 보호하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14일 여성 역무원을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가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의 공간에 시민들이 추모글을 작성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e-mail]

“피해자 보호제도, 잘 갖춰져 있다”는 공허한 말

신당역에서 스토킹 피해자가 사망했던 14일 그 시각, 나는 최근 경찰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2022년 개정판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제도 안내서’의 내용을 SNS에 게시하고 있었다. 보도자료 하나 없이 찾기 힘든 위치에 방치된 그 안내서를 발굴해 지속해서 알리면서도 늘 안내서의 내용대로 국가가 범죄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 그날도 그랬다. 열한 가지나 된다는 경찰의 피해자 안전조치는 스토킹 피해자를 안전하게 지켜내지 못했다.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라는 명칭이 갖는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경찰이 ‘피해자 안전조치’라고 이름을 바꾸고 본인들의 책임을 덜어내는 동안, 난 신고·고소를 했거나 앞둔 피해자들에게 그래도 관련 조치를 신청하라고 알렸다.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는 것처럼 수사기관의 피해자 안전조치가 제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들에게 권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고. 그런데 이제 이 말을 내가 건넬 수 있을까.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권 보장이나 피해자 보호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는 법조인들의 발언은 현실에 대해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전문가인 본인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제도가 존재하면 뭐하나. 피해자는 해당 제도의 존재를 모르거나, 내용을 알아도 언제 어떻게 활용하면 효과적일지 파악하기 어렵다. 설령 활용하려 해도 재판부의 재량에 너무 많은 것들이 맡겨져 있어 추가적인 피해를 받기도 한다. 제도를 운용하는 이들이 바뀌지 않는 한,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제도는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법대로 했더니, 죽이잖아

“그랬더니 죽었잖아요, 그랬더니 죽이잖아요.”

일터에서 살해당한 스토킹 피해자의 소식을 들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계속 연락이 왔다. 범죄 피해를 당한 후 ‘진짜 피해자라면 법대로 해’라는 강요에 시달리던 이들은 하나같이 공적 시스템에 기반을 둔 문제 해결 방식을 신뢰하지 못한다. 피해자 안전조치를 신청한 피해자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으리라는 기대를 접은 상태다. 반의사불벌죄인 스토킹 관련 범죄를 신고·고소한 피해자들은 소 취하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라’고 그들을 설득하고 연대해 왔던 내 입장에서 사법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포기하려는 그들에게 그래도 시스템을 신뢰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피해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5일, 청주에서 성폭력 피해를 보았던 두 청소년 피해자들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날이기도 했다. 그 어린 피해자들도 ‘법대로’ 했지만, 검경의 떠넘기기 수사과정에서 죽음으로 내몰렸다. 피해자 유족이 국가에 책임을 묻겠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당 선고를 지켜보기 위해 모였던 이들 중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과 ‘청부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도 공적 시스템을 통한 문제 해결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는데, 돌아서자마자 접한 또 다른 피해자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16일 진보당 윤희숙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스토킹 살해’가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앞에서 ‘불법촬영·스토킹·여성혐오범죄 강력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닙니다

지긋지긋하다.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 재판 참여권도 제한돼 있고, 진술권도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는다. 사법 절차를 통해 받게 되는 추가 피해를 감내해야 마땅하다는 말이 너무 싫다. 당사자가 아니라면서도 여성 대상 폭력 및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무결해야 한다. 범죄 입증의 책임을 떠안아야 하며,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적인 언행을 감수해야 한다. 이 명제는 절대적인가? 이게 정의인가? 이게 올바르고 적절한 시스템인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존재 가치가 있는가?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면서 피해자가 죽거나 죽여야 시스템은 겨우 변하는 척이라도 해왔다. 성폭력 관련 법안의 제·개정, 수사과정에서의 피해자 안전조치 마련,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 증인지원프로그램 제작 등 과정은 모두 피해자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 때는 피해자의 희생을 요구하더니, 정작 만든 제도와 시스템의 운용에는 피해자를 배제·소외시키고, 나아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서.” 이번 사건에서도 수사기관은 스토킹 피해를 본 피해자의 의사를 강조하며 그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불법촬영과 그것을 토대로 한 협박, 만남 강요 등으로 이미 1차 고소한 후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태에서 피해자가 공적 시스템에 대해 그 어떤 신뢰를 할 수 있었겠나? 패닉 상태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수사기관이 제 역할을 포기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러면 스토킹으로 2차 고소를 했을 때 왜 구속영장 신청을 또 하지 않았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의 ‘보복 협박’ 등으로 접근해 엄중히 처벌할 수 있던 기회를 날려 버린 게 수사기관 아니던가? 왜 당사자가 아니라면서도 피해자의 의사를 내세워 책임을 떠넘기는가?

구속영장 기각, 기각, 기각…

법원의 형식 논리 역시 피해자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피해자 사망 전 긴급체포된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이 내세우는 논리를 보면, 피의자 인권 보호의 잣대로 인식하는 구속영장 발부 비율에 집착하는 법원의 속내가 드러난다.

한국 법원은 피의자·피고인의 인권 보호, 절차 참여권 등은 적극적으로 보장하지만, 피해자는 안중에 없다. 그러니 불법촬영 후 지속적인 협박과 강요를 한, 그것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해 피해자의 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가해자를 풀어줄 수 있는 것이다.

앞서 같은 아파트 내에 거주하는 청소년을 흉기로 협박해 납치하려던 ‘40대 남성 회사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법원이다. 역시 같은 이유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추가 피해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법원은 신경 쓰지 않는다. 권위는 누리지만 책임은 회피하는 한국 법원의 현주소다.

14일 여성 역무원을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가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의 공간에 시민들의 추모글을 적혀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e-mail]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만 있으랬잖아요. 그런데 사회가 죽이잖아요.”

울고 분노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한참을 고통을 토로하던 피해자들은 시간이 지난 후 사과하며 그래도 다시 싸워도 되냐고, 수사기관과 법원을 믿어도 되냐고 내게 물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며, 그래도 사법시스템을 선택할 것이냐고 질문했다.

피해를 보았던 십수 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고소할 것이다. 한국의 형사사법시스템을 특별히 신뢰해서가 아니다. 당시 피해자인 내 입장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한정적이고, 취약한 피해자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여전히 가해자의 ‘보복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언제든 내 삶이 가해자에 의해 중단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그런데도 시스템을 활용하는 연대활동을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데도 피해자들은 다시 싸움을 준비하고 이어나가기로 했다. 국가가, 시스템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그들은 다시 한 번 공적 시스템을 신뢰하려 애를 쓰고 있다. 동시에 피해자를 사망으로 내몬 시스템에 대한 감시와 비판도 지속하기로 했다. 피해 복구에 온 힘을 기울여도 모자랄 피해자들이 왜 이런 노력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들은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시스템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연대자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