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시민들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추모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구속영장 발부요건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현행 구속요건이 ‘피해자를 해칠 가능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15년 만에 관련 조항 개정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구속 사유를 나열한
형사소송법 70조1항은 피고인이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는
형사소송법 70조2항에 규정돼 있다. 1항의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하라는 ‘보충적 규정’이다. 이 조항은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추가됐다.
그러나 ‘보충적 고려 사항’을 두고 독자적 구속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수년째 제기돼 왔다. 특히 스토킹이 살인 등으로 이어진 사건이 최근 빈발하면서 스토킹→강력범죄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피해자 위해 우려’를 구속 사유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김혁 부경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복범죄 방지와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속제도의 재설계’ 논문에서 “구속제도를 보복범죄 방지와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2018년 대검찰청이 발간한 <형사법의 신동향>은 “피고인 및 피해자 보호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시대적 현실을 반영해 피해자 위해 우려 등도 독자적 구속 사유로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박남미 경북대 법학연구원 박사)는 논문을 실었다.
영장 심사 판사들 중에서도 구속 사유를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 지방법원 형사부의 한 판사는 20일 “독자적인 구속 사유가 아니면 아무래도 영장을 심사할 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구속 사유 조항이 워낙 추상적이고 제한적이라 이를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라도 영장 발부 사유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이미 구속심사 때 고려해왔던 피해자 위해 가능성 등을 70조1항에 명문화한다고 해서 구속 사유가 확대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구속 사유 재정비가 본질적 대책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재경지법 형사부 판사는 “스토킹 범죄자는 출소한 뒤에도 피해자를 쫓을 정도로 집요한 성향을 보인다. 구속이 능사가 아니라, 스토킹을 적극적인 구애 쯤으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를 없애고 피해자 보호 대책을 강화하는 게 더 필요한 해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이날 조건부 석방 제도 등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입장문을 내어 “현행 제도는 구속과 불구속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만 가능해 구체적 사안마다 적절한 결론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 일정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무죄추정원칙과 피해자 보호 사이에 조화를 이루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건부 석방 제도로는 판사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을 조건으로 가해자를 석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한편, 경찰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31)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해 21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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