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조문한 뒤 오열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친구 2명은 빠져나왔는데 3명은 같이…서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죽었어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거예요.”
29일 밤, 김영조(55)씨는 서울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 속보가 뜨자 아들(25)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부모 걱정을 덜어주었던 아이”였다. 평소엔 자취를 하는 평택이나, 고향인 익산·전주로 가서 놀던 아들이 그날따라 친구 넷과 이태원에 갔다고 했다. 저녁 8시께 한 통화에서 아들은 “사람이 많아서 밥 먹기 힘들다”고 말했다. 불안했다. 김씨는 아들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다른 사람이 받았다. 김씨는 얼른 짐을 챙겨 익산 집을 출발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 아들이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람이 모이면 어떻게든 통제를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너무 안 됐어요. 이건 생죽음이잖아요. 생죽음도 운명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데…” 31일 오후, 아직 빈소도 차리지 못한 채 서울성모병원에서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던 김씨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희생자들의 빈소가 속속 꾸려지고 있다. 지난 30일 밤 부터 차려진 차려진 참사 희생자 빈소에서 만난 가족들은 젊고 소중했던 자신들의 아들과 딸, 조카, 친구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에서 31일 오전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날 오전 10시40분,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 조문객을 맞을 준비 중인 빈소 앞에서 머리가 하얗게 샌 중년의 남성이 두 손을 모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눈길이 닿은 곳은 빈소 앞 안내 화면에 뜬 딸 이아무개(30)씨의 사진이다. 이씨는 지난 29일 이태원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야참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하던 밤, 인파에 휩쓸리며 변을 당했다. “(친구한테) 전화가 왔을 때 사기 같은 건줄 알았어요. 차라리 사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이씨의 아버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씨는 “부모 속을 한번도 썩인 적 없던 딸”이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잘 했고 직장에 들어간 뒤엔 성실하게 일했다. 이씨의 아버지에게 딸은 무엇 하나 빠짐이 없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황망히 떠나간 딸이지만, 이씨가 ‘좋은 친구’로 기억되기를 이씨의 아버지는 바랐다. “생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구름처럼 흩어지는 거라지만 나보다 먼저 간 게 안타깝고 애석할 뿐이죠. 그래도 친구들한테는 좋은 친구들로, 남자친구한테는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낸 여자친구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같은날 오전 부천성모병원에서 만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아무개(26)씨의 삼촌은 조카를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 했다. ‘집순이’ 같던 조카는 29일 친구랑 이태원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밤 10시쯤에 엄마한테 ‘집에 간다’고 카톡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네요.” 김씨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려던 차에 귀국했거든요. 엄청 착실하고 조용한 아이였어요.” 그런 조카를 잃은 삼촌은 정부의 대응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왜 경찰이 배치가 그렇게 안됐는지... 통제할 수 있는 일인데 안 한 거잖아요.”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지하철 이태원역 1번출구 앞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편지가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참 공부만 하고 이제 딱 좀 재미있게 살려고 했던 순간에 이렇게 돼버렸네요.”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아무개(26)씨는 얼마 전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지난 30일 밤, 삼육서울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만난 이씨의 아버지는 “주변에 자랑도 하고 그랬는데, 딱 자격증을 써먹을 시점에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의 영정 앞에는 과자 ‘자가비’가 놓여 있었다. “상이 뭔가 허전한 것 같아서 좋아한 과자가 뭐였지, 하다가 생각난 게 저 과자였어요.”
“엄청 효녀지요, 효녀.” 같은 날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참사 희생자 박아무개(27)씨의 이모는 “평생 일만 한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던 조카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박씨는 간호조무사 일을 하다가 간호사가 되기 위해 올해 간호 대학에 입학했다. 박씨는 전남 목포에서 함께 간호대를 다니는 친구와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광주에서 달려온 엄마는 중환자실에 누워 임종을 앞둔 박씨를 만나야 했다. 이모가 기억하는 박씨의 못다 이룬 꿈은, 역시 엄마와 함께다. “자동차 면허증도 땄어요. 중고차라도 뽑아서 엄마하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어요.”
이날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참사 희생자가 된 동생 박아무개(44)씨를 그리는 형의 안경에는 눈물 자국이 묻어있었다. 박씨는 인터넷 사업을 했다. 그의 형은 “핼러윈 파티에 간다는 말을 안 하고 갔는데, 지난해에도 갔었던 모양이더라. 아무래도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더 북적이는 곳에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동생이 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이유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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