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입구 주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3일 오전 지인 4명을 잃은 직장인들이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첫 112 신고로 알려진 10월29일 저녁 6시34분부터 시민 안전의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이 사고를 보고받은 이튿날 0시14분까지. ‘참사 앞에 국가가 부재했던’ 5시간40분을 촘촘히 밝혀내는 것은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의 시작점이다. 156명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던, 최소한 더 많은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이 시간은 아직까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3일 현재까지 밝혀진 점과 밝혀야 할 대목을 정리했다.
참사 당일 현장에서 쏟아진 112 신고가 당도한 곳은 서울경찰청(서울청) 112치안종합상황실(상황실)이다. 당직으로 이날 상황실 책임자(상황관리관)를 맡은 류미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총경)은 상황실이 아닌 자신의 사무실에 머물렀다고 한다. 류 총경이 제자리에 복귀한 시간은 29일 밤 11시39분, 참사가 벌어진 지 1시간24분 뒤다. 서울청 관계자는 “당시 상황관리관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태원에 경력을 투입하거나 경찰청장에게 바로 보고하는 등의 조처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황관리관의 부재로 경찰력 투입이나 경찰청장에게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3일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류 총경을 특별수사본부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류 총경 한 사람 없었다고 서울청 전체가 이태원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큰 의문으로 남아 있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인 밤 10시15분까지 사고 현장의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는 11건, 사고가 발생한 시각부터 11시까지 45분 동안 이태원 일대의 112 신고는 87건에 달했다. 김광호 서울청장이 사고 발생을 최초 인지한 시점도 밤 11시36분에 이르러서다. 이 시간까지 서울청으로 전해진 절박했던 참사 현장의 신고는 모두 묵살당한 셈이다.
무대응: 현장에서는 무엇을 ‘통제’하고 ‘설명’했나
서울청에 접수된 신고는 용산경찰서와 이태원파출소로 전해져 현장 대응이 이뤄졌다. 경찰이 1일 공개한 112 신고 녹취록과 조처(종결) 사항은 참사의 크기에 견줘 이해할 수 없는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저녁 6시34분 신고에 대해서는 1시간37분이 지난 8시11분 “강력해산조치”를 통해 종결했다고 적혀 있다. 이후에도 “경찰관 배치됨을 고지” “일대 시민 통제하여 종결” “신고자에게 현장 상황 설명 후 종결”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표현만 보면 위험한 상황들이 적절히 해소됐거나 구태여 현장 출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상황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경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장을 통제하고 신고 내용을 해결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용산경찰서 쪽은 “인파가 너무 많고 잘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여러 사건을 가지고 나가서 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다음 신고자에게 전화했을 때 ‘다른 데 이동해서 괜찮다’라고 하면 종결했는데, 그런 것들은 현장 출동에 포함되지 않았고 상황 설명 후 종결로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경찰 인력에 견줘 압도적인 인파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던 셈이다.
현장을 관리하던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결국 저녁 7시34분께 용산경찰서 교통과 쪽으로 교통기동대(20명 규모) 출동을 긴급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던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을 위한 전국집중 촛불대행진’ 집회 관리 때문이었다. 교통기동대가 이태원에 도착한 건 집회가 끝난 밤 9시30분께다.
사고 위험보다 집회 관리를 중점에 둔 경찰 운영 기조는 서울청 차원에서도 줄곧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투입된 교통기동대는 용산경찰서 쪽이 애초 서울청에 요청했던 경비기동대 대신 지원받은 인원이다. 그마저 이태원 인파 관리를 위한 전담 지원이 아니라, 집회 관리를 마치고 투입되는 식이었다. 참사 사흘 전 경찰 내부에서도 ‘2022년 이태원 핼러윈데이 치안상황 분석과 종합치안 대책’ 보고서를 통해 사고 가능성이 언급됐음에도, 안전 관리가 집회 관리에 밀린 과정이나 위험 가능성이 정부의 어느 선까지 전해졌는지 등은 아직 세세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경찰과 소방이라는 두 축을 통해 국가의 재난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통제해야 하는 대통령실의 대처도 따져볼 대목이다. 지난달 29일 밤 ‘경찰·소방청→행정안전부→대통령실’로 연결되는 수직적 보고라인 가운데 경찰 쪽 한 축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상황을 보고받은 것은 날을 넘긴 30일 0시14분에 이르러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한 축인 소방당국 쪽 보고를 통해 밤 11시1분 참사 사실을 보고받았다.
그러나 소방당국과 경찰을 총괄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보다 19분 늦은 11시20분에야 참사 사실을 처음 보고받았다. 밤 10시48분 소방청 상황실이 행안부 상황실에 1단계 보고를 했고, 11시19분 행안부 상황실이 내부 공무원들에게 긴급문자를 발송했지만, 정작 장관에게는 문자 전송이 누락됐다. 이 문자를 받은 이 장관의 비서진이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날 이 장관은 윤 대통령보다 참사 보고를 늦게 받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을 만나 “지금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병상에 계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돕는 게 급선무”라며 답변을 피했다.
대통령실이 이태원 상황을 최초 접수한 시점과 경찰 수뇌부가 참사를 인지한 시점까지 최소 40여분 차이 나는 점도 의문이다. 대통령실이 최초 인지 뒤 이 상황을 경찰 쪽에 즉시 확인하거나 적극적으로 전파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정상황실이 소방청에서 처음 보고를 받은 시각(밤 10시53분)을 기준으로 하면, 김광호 서울청장은 43분 뒤(밤 11시36분), 윤희근 경찰청장은 81분 뒤(0시14분)에야 참사를 처음 알았다. 밤 10시53분 직후에라도 경찰에 상황이 공유됐다면 중상자 응급조처나 병원 이송을 위한 인파·교통 통제, 응급환자 이송 등 참사 수습 시간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도 경찰에 사태의 심각성을 다른 경로로 전파했다”면서도 구체적인 시간이나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방준호
whorun@hani.co.kr 장예지
penj@hani.co.kr 이우연
azar@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