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④
핼러윈도 이태원도 잘못이 없어요
핼러윈도 이태원도 잘못이 없어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연합뉴스
*편집자: <한겨레>는 6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ㄱ(32)씨가 당시 겪었던 상황과 이후 심리 상담 과정 등에 대해 들었다. ㄱ씨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상담기록과 일지 등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차례로 옮겨 싣는다. 사고 당일인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인파에 휩쓸렸지만, 행인이 난간으로 끌어올려 가까스로 구출된 ㄱ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 받았다.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잖아요
자신에게(상담사) 편지를 써보는 방법으로 글을 남기는 것도 좋다는 말에 메모장에 써둔 글 선생님, 저는 확실히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요
잠이 찾아오지 않는 오늘밤은
무섭고 두렵고 초조해서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닌 거 같아요 그냥 밤 내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립던데요
그리움이었어요 콘헤드 가족 코스튬을 한 3명 가족이 기억나요
20대 딸, 50대 엄마, 아빠더라고요
세대 관계없이 그렇게 콘헤드 코스튬 하고 길거리 즐기는 게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그분들은 무사히 집에 가셨을까요? 녹색어머니회 코스튬을 하고 단체로 6명이서 몰려다니던 남자애들은 잘 갔을까요?
‘엄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얼른 집에 들어가’하고 장난도 쳤는데요,
덩치는 산만 해서 어머니 가발을 쓰고 점을 찍고 녹색 모자를 쓰고 노는데 웃기고 귀여웠어요
사진이랑 영상도 찍어뒀거든요 방금도 보고 왔어요
연락이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워요 그냥
파티가 나쁘다고 가르칠 수 있어요?
그런데 올해 처음 이태원에 한국 아가들이 많이들 나와 있더라고요 몇년간 한국 핼러윈 문화도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어요 나도 내년에는 더욱 캐릭터가 짙고 아이들이 반가워할 만한 캐릭터로 분장해야지
이쁘고 섹시한 거 말고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거 도날드덕 꼭 해야겠다 싶었고요 너무 귀여웠고, 해피핼러윈 외치며 먼저 다가가 인사도 많이 해주었어요 아이들 표정이 어떤지 아세요? 어른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면 부끄러워하지만 두 눈에 반가움이 가득해요 초코릿 주면 더 좋아하고요
아이들은 역시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아기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기를 껴주고 같이 놀아주는 어른인 거 혹시 아세요? 아이들은 어른들이랑 놀고 싶어해요
어린 아이들일수록 자기 우주는 부모이자, 그 부모의 친구들이거든요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는 핼러윈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핼러윈이 너무 좋아요 오늘 밤에는 그 아기들이 생각 많이 나네요
걔네는 집에 잘 갔겠지? 뉴스에 아이들 이야기는 없는 거 보니 다들 집에 잘 갔나봐. 같이 온 엄마 아빠를 잃은 건 아니겠지 7살짜리 조카가 있거든요
이모가 핼러윈에 환장하고 놀러 다니는 거 알고 있어요
유치원에서 핼러윈 취소가 됐나 봐요
왜 이번엔 안 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오래 생각해봤어요 사람 많은 데는 위험하니까 가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나중에 커서 이태원도 가는 게 아니야
라고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단편적으로 그렇게 가르치면 이태원은 나쁜 것,
핼러윈은 나쁜 것, 파티는 나쁜 것, 모든 유흥은 나쁜 것
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쁘죠?
엄마 아빠랑도 같이 놀고 다른 어른들이랑도 놀고
자기 친구들이랑도 노는 축제인데요. 사회의 역할이 뭔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혐오사회로 가는지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본질을 파악하고 맥락을 짚어주는 어른이어야 되는 거 아닐까요
내년에도 갈 거예요, 도날드덕 분장 하고
이태원도 잘못이 없구요. 그런데 너무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어요
곧 또 국화꽃 놓으러 이태원에 갈 거예요
가서 더 당당히 이태원에서 밥도 먹고 올 거고
내년에도 핼러윈 분장 끝장나게 하고 이태원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도날드덕으로 분장을 꼭 해야겠어요 그런데 뉴스에 방송과 공연계에서 핼러윈이라는 단어가
이제 사용 못 한다는 뉴스가 나오네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어른들은 정말,,,
모르나 봅니다 정리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이슈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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