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22개 단체가 모인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9월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과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교육부가 9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성소수자’와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삭제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교육과정이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교육부가 행정예고한 교육과정 개정안을 보면, 기존 교육과정에 담긴 ‘장애인, 이주 외국인, 성소수자 등’이라는 표현은 ‘성별, 연령, 인종, 국적, 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사회구성원 등’으로 바뀌었다. ‘성소수자’라는 표현이 빠진 것이다. 교육과정은 학교 수업의 가이드라인으로 향후 교과서 집필의 기준이 된다. 이 개정안이 확정되면 2025학년도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서에서 성소수자라는 표현은 사라진다.
장홍재 교육부 학교교육지원관은 개정 이유에 대해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인 청소년기에 교육과정 안에 성소수자가 사회적 소수자의 구체적 예시로 들어갔을 때 발생할 여러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성소수자’라는 말이 빠졌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차별 문제가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획조직국장도 “사회에서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일상에서 차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표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존 도덕·보건 교육과정에 담긴 ‘성평등’ 표현을 ‘성에 대한 편견’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라고 수정한 대목도 문제로 지목된다. 김수정 국장은 “성차별을 마치 개인이 편견을 갖지 않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보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송이 탁틴내일 교육부장도 “오랫동안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특정한 성 역할을 강요하며 여성을 억압해왔던 역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성차별”이라며 “성차별이 제도의 문제이자 구조적 차별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 ‘성평등’ 용어를 쓰는 게 맞다”고 밝혔다.
기존 교육과정에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라고 쓰던 표현을 ‘성·생식 건강과 권리’로 바꾼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나영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재생산 권리는 상호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를 가질 권리와 임신과 출산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권리 등을 포괄하는 말”이라며 “이것을 ‘생식’으로 표현한다면 권리 보장 측면보다는 임신·출산을 위한 개인의 건강 유지 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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