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민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 화면을 켠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장대비가 내린 이날 집회에서는 촛불 대신 휴대전화 촛불이나 엘이디(LED) 초를 들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2일 저녁 6시34분, 찬 가을비가 쏟아지는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 수만개의 휴대전화 불빛이 촛불처럼 켜졌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압사 위험을 알리는 첫 112 신고가 들어온 시각에 맞춰 이날 추모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불을 밝힌 것이다. 이들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이태원 참사, 성역없는 진상규명,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오후 5시30분께부터 ‘10·29 참사 청년추모행동’ 등 94개 단체가 공동주최한 이태원 참사 추모집회가 열렸다. 시민 5만여명(주최 쪽 추산)이 숭례문 앞부터 시청역까지 400m 길이로 뻗은 6개 차로와 인도를 가득 채웠다.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조합원 중 상당수도 추모집회에 참여했다.
이태원 참사로 두 명의 친구를 잃은 한 청년은 추모 현장에 직접 쓴 편지를 보내왔다. “일주일에 몇 번씩, 10월 말 전으로 돌아가서 (너희를) 만나는 꿈을 꾼다. 그런데 난 이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기사의 댓글이, 정부의 반응이 가슴을 후벼파서 예전처럼 속 없이 살 수가 없다.”
참사 당일 구조에 뛰어들었던 시민이 보내온 편지도 있었다. “길 한복판에서 그렇게 죽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내가 살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생각나 무섭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것 같다는 죄책감에 괴롭습니다. 그날 이태원에 갔던 희생자, 생존자들 모두 잘못한 건 없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꼬리자르기식 책임 물기가 아닌, 참사의 정확한 책임자를 가리고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주형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장은 “법 개정으로 소방도 경찰과 함께 행정안전부의 지휘를 받게 됐다. 일선 소방서장과 지휘팀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법률을 개정할 땐 지휘와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정작 사건이 발생하니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소방노조는 14일 오전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고발할 예정이다. 고진영 공노총 소방노조 위원장은 13일 “경찰 및 소방 총지휘 책임자인 이 장관을 직무유기 및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고발하고, 오후에 국회에서 이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 내부에서도 특수본 수사의 ‘편향성’을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참사를 키운 원인인 경찰 지휘부의 늑장 대응 등 윗선 책임 규명보다는 용산경찰서 정보보고서 삭제 등 지엽적 사안에 수사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11일 정보보고서 삭제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특수본에 입건된 용산경찰서 정보계장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참사 책임을 일선 경찰들에게만 떠넘기는 듯한 지휘부 태도와 특수본 수사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모양새다.
경찰 내부망 ‘폴넷’ 등에는 “권한만 누리고 책임지지 않는 윗선 수사는 전혀 하지 않고 정권 눈치만 보고 현장 경찰만 윽박지르고 있다” “경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경찰을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 왜 책임을 경찰관에게만 묻고 정부에는 물어서는 안 되는지 답을 들어야 한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에 대해 특수본은 13일 오후 “‘하위직만 수사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겸허히 청취하고 있다. 기초수사 뒤 빠른 시일 내 수사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2일 저녁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민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 화면을 켠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장대비가 내린 이날 집회에서는 촛불 대신 휴대전화 촛불이나 엘이디(LED) 초를 들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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