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발생한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쪽 이면도로.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취운전으로 초등학생을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구속된 가운데, 경찰이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유가족의 반발을 사고 있다.
7일 강남경찰서가 통합관제센터 시시티브이(CCTV)와 차량 블랙박스 등으로 확인한 현장 상황을 재구성하면, 지난 2일 만취 상태로 운전하던 30대 남성 ㄱ씨는 오후 4시57분05초 청담동 언북초 후문 근처 이면도로에서 좌회전해 자신의 집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ㄴ(9)군을 차로 쳤다. ㄱ씨는 이후 21m 거리에 있는 주차장까지 더 운전해 차를 세운 뒤, 4시57분48초에 뛰어나와 57분53초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ㄱ씨가 사고 현장을 떠나고 복귀하기까지 48초가 걸렸다. 112·119 신고는 사고 직후 현장을 목격한 주변 가게 점주들이 했다.
경찰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사(뺑소니) 혐의를 판단할 때 사고 후 복귀 시간과 이동했던 실제 거리, 사고 교통상황, 가해 운전자의 태도, 적극적인 구호조처 여부 등을 고려한다. 경찰은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ㄱ씨가 당시 사고를 내고 40여초 만에 현장에 복귀하는 등 도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사고 당일 경찰은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및 위험운전 치사, 음주운전 혐의만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지난 4일 영장이 발부됐다.
ㄱ씨가 현장으로 돌아오기까지 1분 미만(48초)이 소요된 점과 뛰어서 복귀했다는 행동 등이 ‘도주’를 판단하는 주요 쟁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가해 운전자가 사고를 내고 1분 이내에 도달했고 뛰어왔다는 게 시시티브이로 확인됐다면 경찰이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고가 났다고 바로 차를 세우고 구호조처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김승환 변호사도 “이번 사건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가해 운전자가 현장으로 올 때까지 5분이 넘었다면 도주치사를 적용하기 쉬웠을 것”이라면서 “시간도 혐의를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어쨌든 바로 돌아왔으니 법리적으로 도주했다고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조건명 변호사는 “가해 운전자가 현장을 바로 이탈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뺑소니 혐의를 받는 이들은 매번 ‘사고를 몰랐다’고 주장한다. 이에 전후 사정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향후 조사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핸들을 갑자기 틀었는지 등 비정상적인 운행이 있었는지를 보고 혐의를 적용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ㄴ군 부모는 ㄱ씨가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호조처를 하지 않았기에 경찰이 뺑소니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관련 탄원서를 만들어 동의 서명을 받고 있다. 유족은 이날 오후 6시까지 4000여건의 탄원서를 받아, 이르면 8일 경찰서에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 ㄱ씨에게 적용된 어린이보호구역 치사는 형량이 최소 징역 3년이지만, 뺑소니(도주치사)가 적용되면 최소 징역 5년으로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ㄴ군 아버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명백한 건 음주운전을 한 사람 때문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우리 아이같은 일이 생겨선 안 된다”며 “스쿨존에 인도 없는 양방향 도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환경의 변화도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