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벽에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추모 메모지와 함께 젤리가 붙어 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서울 강남구 언북초 스쿨존 음주 사고로 9살 초등학생을 숨지게 한 운수회사 대표 ㄱ(40)씨가 2심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됐다. 검찰이 주장한 ‘뺑소니’ 혐의는 2심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규홍)는 24일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위험운전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 대해 징역 7년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ㄱ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어린이 보호구역 교차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28%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초등학생 이동원군을 치어 숨지게 했다. ㄱ씨는 이군을 차로 친 뒤 즉시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21m 떨어진 자택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야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집에서 술을 곁들여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던 중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고자 운전대를 잡았다. 술을 마신 뒤 2시간가량 지났고 잠도 잤으며 거리가 가까워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자녀를 태우고 운전했고 사고 전까지 좁은 골목길을 비교적 정상적으로 운전했던 점은 인정되지만, 사고 경위나 혈중알코올농도에 비춰보면 이 사고는 음주로 인해 피고인의 판단력, 주의력, 조절 능력이 저하되어 야기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ㄱ씨에 대한 감형은 ‘죄의 개수’에 대한 1·2심의 판단이 갈린 탓이다. 1심은 ㄱ씨의 어린이보호구역치사죄와 위험운전치사죄가 각각 별개의 죄라고 판단했지만, 2심은 1개의 운전 행위로 1명의 피해자를 숨지게 한 ㄱ씨 행위를 ‘1개의 죄’로 처벌하면서 형이 낮아지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이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힌 공탁금도 양형에 일부 반영했다. ㄱ씨는 피해자 유족에게 1·2심을 거치며 총 5억원을 공탁했다. 재판부는 “형사공탁제도가 시행된 뒤 피해자가 공탁금 수용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경우에도 공탁 사실을 피고인에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면서도 “ㄱ씨의 범행 동기나 내용, 수사·재판 과정상 태도, 피해 변제 및 합의를 위한 노력, 반성의 진실성 등을 종합 판단해 공탁 사실을 매우 제한적으로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1심에 이어 2심도 ㄱ씨의 ‘뺑소니’ 혐의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사고 직후 현장을 이탈한 ㄱ씨에게 도주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도주치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1·2심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ㄱ씨가 주차 뒤 즉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온 점,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고를 낸 사실을 밝힌 점, 현행범으로 체포되기 전까지 계속 피해자 주변에서 자리를 지킨 점 등을 보면 도주 의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이군 아버지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과연 법원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시민들 요구에 대해 얼마나 경청하고 고민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징역 5년이라는 결과를 믿을 수가 없고 어안이 벙벙하다”며 “공탁을 받을 의사가 전혀 없다고 누차 얘기했음에도 일부 참작했다는 부분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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