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서울 강남구 언북초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뒤늦은 네가지 대책이 마련됐다. 또 2년 전 사고 지역에 ‘보도 설치’를 하기에 앞서 차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려던 안건은 규정상 스쿨존이라는 특성상 별도 심의기구 의결 없이 경찰서장 지시로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스쿨존 내 안전시설 설치에 최종 판단 권한이 있는 경찰이 ‘어린이 안전’에 보다 무게를 두고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청담동 언북초 후문 스쿨존에 단속용 무인카메라를 비롯해 모두 네가지 대책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일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이 학교 학생 3학년 ㄱ(9)군이 사망한 뒤로 나온 결정이다. 경찰은 이밖에도 앞으로 신호가 없던 사고지역 스쿨존에 ‘정지 후 서행통과’를 뜻하는 적색 점멸등을 설치하고, 스쿨존 사거리에 3개만 있던 횡단보도도 하나 더 설치하기로 했다. 기존에 있던 과속방지턱도 보다 높일 계획이다.
8일 낮 12시께 찾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현장 직원이 방범용 시시티브이(CCTV)를 손보고 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앞서 2020년 1월 강남경찰서 교통안전심의위원회(심의위)는 강남구청이 전달한 사고 지역 일방통행로 변경과 관련해 주민 50명 중 48명이 반대하자 안건을 상정하지 않으면서 보도 설치도 무산됐다. 그러나 ‘교통안전시설 등 설치·관리에 관한 규칙’(17조3항)상 스쿨존 교통안전시설은 심의위 의결이 없이도 시·도 경찰청장 및 경찰서장 지시로 설치를 결정할 수 있다. 구청의 주민 의견수렴 결과 및 심의 의결과 별개로 어린이 안전 등을 고려해 경찰서장이 일방통행 변경 등을 지시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사고 스쿨존에 경찰이 새롭게 보완하기로 한 횡단보도, 점멸등 등 교통안전시설은 서울경찰청장 지시로 이뤄질 예정이다. 스쿨존이 아니라면 횡단보도 설치는 심의위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다. 다만 경찰청 관계자는 “양방통행을 일방통행으로 변경할 때 주민의 동의가 없다면 민원이 많이 발생해 (의견수렴과 무관하게 결정하기엔) 무척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며 “어린이의 안전한 통학길이 될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강남구청은 사고 지역 일방통행로 및 보도 설치에 대한 주민 의견을 이달 중 다시 모아 내년 1월 심의위에 안건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시민들이 통행 효율을 이유로 (일방통행 변경을) 반대했다면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 대한 안전의 가치를 그만큼 낮게 봤다는 뜻”이라며 “규정 위반도 아니라면 경찰도 의견수렴과 별개로 스쿨존 내의 안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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