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낸 국가배상 소송에서 정부법무공단(공단)이 피해 국민을 상대로 인신공격 등 부적절한 변론을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의 최종 책임을 지는 법무부는 “과도한 배상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도록 할 의무”만을 말하며 이런 변론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경기 남부 연쇄살인 8차 사건(1988년) 누명 피해자 윤성여씨는 경찰의 강압 수사로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다. 2020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경찰청은 사과 입장문까지 냈다. 윤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심리에서 공단은 윤씨의 장애를 근거로 배상액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씨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장애가 생겼으니 보통 인부 수준의 노임을 100%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윤씨가 이 사건 전에 성실히 일했던 점 등을 살펴서 공단 쪽 주장을 기각하고 18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윤씨 사건을 대리한 이주희 변호사는 8일 “수사기관의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성실하게 일하면서 살았을 윤씨의 일실이익(사고 등으로 잃게 된 장래수입)을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헌법에 따라 ‘국민 보호 의무’를 지는 국가가 이런 변론을 한 점이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공단의 무리한 변론으로 피해 국민이 두 번 상처를 입은 경우는 또 있다. 직속상관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홍영 검사의 국가배상 사건에서도 공단은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개선 노력을 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점은 국가 책임을 제한한다”고 변론했다. 노력하지 않은 피해자 책임도 있기 때문에 국가배상 책임이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세월호 생존자들이 제기한 한 국가배상 사건에서는 해양경찰의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 확정 판결 대신 하급심인 1심 무죄 판단을 근거로 “위법행위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들 사건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소송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말’이나 마찬가지인 공단 답변서가 민망한 수준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고 김홍영 검사 사건 공단 답변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법무부는 ‘서울고검에 위임해서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서울고검은 ‘정부법무공단에 맡겼으니 모르는 일’이라고 서로 회피했다”고 전했다.
정부법무공단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관 등을 당사자로 하는 국가 소송을 담당하는 곳이다. 국가에서 받는 사건 수임료나 정부 보조금 등으로 운영된다. 소송에서 지출되는 비용을 줄여서 궁극적으로는 ‘세금’을 아끼는 것이 공단의 주요 임무이기 때문에 손해배상 금액을 최소화하는 논리를 개발해 변론에 나선다. 문제는 국가 잘못이 분명하거나 해당 기관이 사과까지 한 사건에서조차 배상액을 깎겠다며 피해자에 대한 인신공격성 변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사건 등 배상 규모가 큰 국가폭력 사건 소송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단의 이런 태도는 국가가 어렵게 내놓은 사과와 반성의 진정성마저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공단은 “개별 소송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고만 했다. 법무부 역시 “국가배상 소송 담당자들은 구체적 사실관계, 관련 법리 등을 정확하게 검토하여 과도한 배상금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형사 재심과 국가배상 사건을 주로 맡는 박준영 변호사는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배상금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묻지마 변론’이 아니라 국가 예산의 한정성 등 현실적인 점을 고려해서 조정하자고 제안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만 하다. ‘국가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는 공단의 답변서가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작성되면서 피해 국민에게 거듭 실망을 주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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