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역 광장에 노숙인들이 머무르고 있는 텐트. 서혜미 기자
한낮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크게 떨어진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 고아무개(68)씨는 3.3㎡(1평) 남짓 좁은 방 안에서도 두꺼운 연두색 패딩을 입은 채 이불을 온몸에 꽁꽁 싸맸다. 난방 없이 얇은 전기장판을 깔고 버텨보지만, 오래된 건물은 웃풍을 막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고씨가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설 연휴 마지막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파는 취약계층에게 더 매서웠다. 2018년부터 쪽방촌 주민의 식사·의료 지원 등을 해온 구아무개 목사는 이날 <한겨레>에 “이렇게 날이 추워지면 대부분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해 방안에 웅크리고 계시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구 목사는 “쪽방은 죽음이 일상화된 공간이지만 체감상 겨울에는 호흡기 질환이 심해지거나, 다른 기저질환이 악화돼 돌아가시는 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오늘 오전에도 방마다 식사를 챙겨드리다 주검을 발견했다”고 했다.
몸을 누일 집이 없는 노숙인들은 당장 강풍을 막아줄 곳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한 교회가 천막을 치고 예배를 시작했는데, 시작할 때 10명 남짓이던 참석 인원은 낮 12시40분께 노숙인들이 대거 참여하며 40여명까지 불어났다. 예배를 마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희망지원센터로 이동하거나, 지하철 1·4호선 서울역 지하 통로로 이동했다.
서울역 계단에 박스를 두 번 접어 깔고 앉아있던 백금옥(63)씨는 “평상시에는 저녁 6시가 지나서 (지하로) 내려오는데, 지금은 장갑을 껴도 손이 너무 시려서 어쩔 수 없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 남성 노숙인은 ‘역사 내 노숙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은 벽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얼어붙은 손을 연신 쥐었다 펴기도 했다. 일부는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추위를 버티기도 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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