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전 국회의원(오른쪽)이 지난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법정 나서는 남욱 변호사. 연합뉴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대장동 민간개발업자들에게서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한 재판부가 이 사건 핵심 증거였던 ‘정영학 녹취록’ 속 김만배씨의 대화 내용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50억 클럽이 있다’는 발언 자체를 신뢰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해당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먼저 ‘50억 클럽’ 발언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에 주목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에 따르면,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무렵이라고 한다. 당시 김씨는 50억원 지급의 구체적인 명목이나 이유 등을 언급하지 않다가, 이후 공통 사업비 관련 다툼이 벌어지면서 ‘50억원 클럽’의 명단과 지급 명목 등이 구체화됐다고 한다.
특히 재판부는 김씨가 2017년에는 ‘50억 클럽’으로 곽 전 의원 등 4명을 언급했다가 2019년 이후 총 6명을 언급하며 사람 수가 늘었고,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로 ‘남욱 변호사의 수원지검 사건을 도와줬다’고 말했으나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50억 클럽’의 다른 인사들과 김씨의 돈거래 내역도 녹취록과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봤다. 머니투데이 그룹 홍선근 회장의 아들을 통해 49억원을 지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돈을 반환했고,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위촉한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의 보수 역시 50억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법정에서의 김씨 등의 발언 등을 종합하면, 녹취록 속 ‘50억 클럽’의 실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직접 김씨한테 돈을 요구했다는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의 진술 신빙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2018년 서울 서초구의 한 식사 자리에서 곽 전 의원이 김씨한테 ‘돈도 많이 벌었는데 나눠 줘야지’라고 요구했고 이에 김씨가 탁자를 내리치며 화를 냈다는 취지로 검찰 수사와 법정에서 증언했다.
특히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법정에서 돌연 “곽 전 의원이 김씨로부터 돈이 없다는 말을 듣자 ‘회사에서 꺼내고 한 3년 징역 갔다 오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시간이 상당히 지난 시점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겪은 일에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렸다는 경위에 대한 남씨의 설명이 선뜻 납득하기 어려워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김씨가 곽 전 의원 아들에게 50억원(세후 25억원)을 지급한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부는 “김씨로서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대장동 개발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거나 문제 제기의 범위를 축소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곽 전 의원의 도움이 필요했던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야당 소속 부동산투기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을 관리하려는 목적 아니었겠느냐는 판단이다. 하지만 곽 전 의원과 그의 아들이 퇴직금 50억원을 두고 연락을 취하거나 금전을 공유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곽 전 의원의 뇌물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는 “곽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50억원은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이라며 “검찰은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법원 역시 ‘50억 클럽’과 관련해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에 맞게 논리를 구성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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