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사업에 도움을 주고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법원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얽힌 각종 사건의 핵심 증거인 ‘정영학 녹취록’의 증거능력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봤다. 검찰이 ‘곽 전 의원-아들 곽씨’ 사이 연결고리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해서다. 검찰의 증거 보강 유무에 따라 이 녹취록이 주요 근거인 대장동 관련 수사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곽 전 의원 뇌물수수 혐의 등을 8일 무죄로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준철)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김만배씨와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이 사건 관련 ‘정영학 녹취록’의 증거능력 자체는 인정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녹음기 저장 녹음파일이 조작되지 않고 재판부에 제출됐으며, 답변 유도나 강요 등 허위개입 여지가 없고, 대화 전체적 흐름이 자연스러운 점 등을 들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녹음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녹취록 자체의 증거능력은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입증 실패로 곽 전 의원은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원이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이라는 점을 검찰이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곽씨가 곽 전 의원 대리인으로 뇌물을 수수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이 있다’면서도 해당 금액 일부가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되거나 그를 위해 사용된 사정이 보이지 않았다고 봤다. 또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이 허언이라는 김만배씨의 주장도 꺾지 못했다. 김씨는 다른 민간사업자들에게 공통 경비를 더 부담시키기 위해 ‘50억 클럽’ 등을 과장되게 말했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는데, 녹취록의 내용을 보강하는 증거를 제시하는데 실패하면서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정영학 녹취록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의 뼈대라는 점에서 검찰의 보강 증거 유무에 따라 향후 관련 수사의 성패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에게 개별 진술 등 증거 신빙성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선례’가 된 셈이다. 현재 검찰은 배임 등 혐의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를 한 축으로, 50억 클럽 수사를 또 다른 축으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수사팀을 새로 구성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이 대표 쪽 수사와 달리, 50억 클럽 수사는 곽 전 의원를 재판에 넘긴 뒤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곽 전 의원에게 적용한 주요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은 데다, 혐의 내용을 입증하는 녹취록의 신빙성마저 부정 당하면서 50억 클럽 수사가 난항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법조계 안팎에서 우려가 나온다.
검찰은 곽 전 의원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9일 기자들을 만나 “객관적 증거 사실관계에 비춰볼 때 재판부 무죄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향후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항소심에 대응할 예정”이라며 “‘50억 클럽’ 부분도 제기된 의혹에 대해 전반적인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재판부가 정영학 녹취록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수사팀은 일방 당사자의 진술이나 특정 증거에 의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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