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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동훈 장관이 말한 ‘상식’, 김현숙 장관은 말하지 못했다

등록 2023-02-13 08:00수정 2023-02-13 21:07

[현장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왼쪽)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갈무리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왼쪽)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갈무리

“동의 없는 성관계는 기본적으로 범죄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과 관련해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던 중 한 말이다. 한동훈 장관은 강간죄 구성요건을 현행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면 “억울한 사람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사가 아닌) 피고인에게 100% 입증 책임이 돌아갈 것”이라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또는 상대방 의사에 반해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 범죄로 처벌하는 것을 두고 “세계적인 방향”이라며 “동의 없는 성관계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범죄”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여성폭력 방지 정책 주무부처 수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몸을 사렸다. 김 장관은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다. 이 지극한 상식을 법에 규정하는 비동의 강간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류호정 의원의 말에 “입법을 할 때는 어떤 개인적인 의견보다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짧게 답했다. 여가부 장관이 법무부 장관보다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류 의원은 김 장관을 향해 “여가부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적극 검토’ (하겠다) 정도의 입장이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여성폭력 문제에 줄곧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여가부는 여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5명 가까이(46.0%)가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해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입은 사실을 보여주는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지난해 8월 누리집에 비밀스럽게 공개했다. 정부 부처는 통상 이런 자료를 낼 때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돌리고, 브리핑을 열기도 한다.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를 했다면, 통상적으로 해당 부처는 더더욱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여가부는 달랐다. 조사 결과를 조용히 공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장관이 실태 조사 결과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대책을 고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가부가 여성폭력 관련 자료 152종을 한데 모은 ‘여성폭력통계’를 공표할 때도 이를 설명하는 자리는 없었고, 보도자료에는 장관의 말 한마디도 담기지 않았다.

기자는 지난 1월 여가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김 장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김 장관은 “(여성폭력통계는) 기존 통계를 정리하는 정책 참고자료 성격이 강해서 (보도자료에) 별도로 멘트를 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서조차 김 장관은 여성폭력통계를 기초로 폭력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를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따로 하지 않았다. 성별임금격차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말에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답하거나, 아이돌봄 서비스 개선 방안을 묻는 말에 “자격증(국가자격제도) 도입이나, 등록제(민간 아이돌봄 서비스 제공기관 등록제) 등 여러 가지를 검토 중”이라고 답한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정부는 지난 1월26일 ‘비동의 강간죄’ 도입 정책과제를 철회했지만, 폭행·협박을 수반하지 않은 성추행과 강간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최근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되기도 했다. 여가부 연구용역 의뢰로 ‘2022 성폭력 안전실태조사’를 수행한 연구진은 지난 1월 중순 여가부에 실태조사 보고서 초안을 제출하며 ‘폭행·협박을 전제하는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검토’를 정책 제언 중 하나로 제시했다. 여가부는 최종 보고서를 오는 4월에 공개하기로 했다. 최종 보고서에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검토’ 정책 제언이 끝까지 유지될지, 이 때 김 장관은 어떤 말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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