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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정, 공정 하더니…‘정순신 부메랑’ 맞은 윤 대통령

등록 2023-02-28 06:00수정 2023-02-28 23:20

청년들 “힘 없으면 피해자임에도 미래 좌절…박탈감”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제공

아들 학교폭력 징계 처분에 대한 ‘끝장 소송’으로 낙마한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변호사) 사태는 주말 사이 한국 사회 갈등의 고질적 뇌관인 ‘공정’ 이슈를 건드렸다. 국민들은 학교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픽션이 아님을 절감했고, 현실에선 소송이라는 법률적 절차 안에서 피해자를 더욱 잔인하게 몰아붙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정 변호사 임명은 무산됐지만, 여진은 지속되고 있다. 대중은 학교폭력을 단순 아이들 싸움이 아닌 ‘중대 범죄’에 준할 정도로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 당시 현직 고위직 검사이자 법률 전문가인 ‘아빠 찬스’로 1년여간 진행된 끝장 소송은 기회가 균등한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한국 사회가 실은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자식에게 곧장 이어지는 불평등한 계급 사회였다는 점을 노출시켰다. 불과 임명 하루 만에 정 변호사가 국수본부장에서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즉각 임명을 취소한 배경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이기도 했던 ‘공정’에 대한 국민적 배신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조국 사태, 한동훈 장관 ‘스펙공동체’ 논란, 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원 사태에 이어 또다시 벌어진 ‘아빠 찬스’ 논란에 청년들은 무력감과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학생 박아무개(24)씨는 27일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권력자가 어떻게 법을 ‘이용’하는지 보여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이자 우리 사회 계급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비슷한 사례가 지속되다 보니 재산과 권력을 축적한 이들이 지금도 이를 이용해 약자들의 눈에 피눈물을 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박탈감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이번 사태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서울대에서도 분노에 찬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에는 “진짜 내로남불은 국민의힘이 하고 있다. 조국 사태 때와 무엇이 다른가?”, “고위 공직자 자녀들은 학폭·음주운전·입시비리·도박을 해도 커버되고, 퇴직금도 수십억을 받을 수 있는 ‘천룡인’(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하는 귀족 계급)이냐”라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ㄱ(23)씨는 “돈과 힘이 있는 자는 죄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마저 좌절되는 모습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사회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별관으로 26일 오전 한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검찰 출신 첫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알려지며 임명된 지 하루만인 25일 물러났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별관으로 26일 오전 한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검찰 출신 첫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알려지며 임명된 지 하루만인 25일 물러났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학부모들도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 한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김아무개(51)씨는 “이젠 ‘부모 잘 만난 것도 복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점점 ‘부모 찬스’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 같아 부모 된 입장에서 무력감과 허탈감이 든다”고 했다. 서울대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 ㄴ(51)씨는 “우리나라 1등 대학에서 이런 악질적인 학폭 사건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점수’ 하나면 다 된다는 것 같아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스스로 불평등 사회를 조장하는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폭’ 논란도 있지만, 이면엔 교수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들이 ‘사회 네트워크’를 이용해 취업·대학입시 등 사회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만연하고, 이로 인해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박탈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도 “공직자가 자녀를 지키기 위해 왜곡된 권력을 행사한 현실을 다시 한번 우리가 확인한 것”이라며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도 ‘부모 힘’으로 누르는 일은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 질서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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