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학대로 숨진 ㄱ씨의 아들(11) 장례식장. 연합뉴스
“보고 있어도 그립고, 조금만 다치고 아파도 제 마음이 아픈 존재가 자식이잖아요. 눈조차 감지 못한 아이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요. 그렇게 누워있는 제 아들이 뜨고 있는 눈에 있는 눈물이….”
인천 남동구에서 친부와 계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아들(11)의 친모 ㄱ씨는 지난달 2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온몸에 멍이 든 아이는 지난달 7일 숨진 채 발견됐다. 2017년 이혼 뒤 ㄱ씨가 살아있는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본 횟수는 두세 차례에 불과했다.
이혼할 당시 전남편은 경제력이 더 나은 본인이 친권과 양육권을 갖는 대신 ㄱ씨에게 아이와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 이행을 약속했다. “아이를 잘 키울 것이고 당신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하겠다”는 말에 ㄱ씨는 재산 분할도 사실상 포기했다. 전남편은 그게 아이 양육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면접교섭 이행과 최선의 양육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애원 끝에 2018년 5월께 본 아이는 한눈에 봐도 마른 상태였다. 전남편에게 항의하자, 그는 아이와의 만남을 원천 차단했다.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연락에도, 집으로 찾아가도 아들의 얼굴을 볼 순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폭언이었다.
지난 2020년 11월, ㄱ씨는 대면 수업이 재개되자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 찾아갔지만, 담임교사는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ㄱ씨는 친권·양육권 변경 소송을 결심했다. 변호사를 선임하자 계모는 “잘 지내고 있는 아이를 법원에 세울 것이냐”, “엄마라면 아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주장해 이마저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해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갔지만, 아이는 ㄱ씨를 보자마자 경계하며 계모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을 켰다. ㄱ씨는 말을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 남편 부부는 ㄱ씨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고, 이들은 ㄱ씨가 아이 앞으로 들어놓은 실손보험 명의를 바꾸라고 종용했다. ㄱ씨가 아이의 병원 진료내역을 알지 못하게 차단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온몸에 멍이 든 아이를 보고 ㄱ씨는 “아이의 아픔조차 가늠할 수 없다. 그동안 지속적 학대로 아이가 겪었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제가 대신할 수만 있다면 진짜 대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ㄱ씨가 겪은 일은 이혼 가정에서 나타나는 ‘부모 따돌림’ 행위다. 부모 따돌림은 양육권자인 한쪽 부모가 자녀에게 다른 부모를 무능하거나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등 아동이 비양육부모를 거부하도록 조종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 따돌림이 계속될 경우, 아이는 비양육자를 적대적으로 생각하며 모든 접촉을 거부하게 된다. ㄱ씨가 겪은 일처럼 자녀가 다른 부모와 만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부모 따돌림 행위 유형이다.
한국에서 부모 따돌림에 대한 인식은 없다시피 하지만, 부모 따돌림은 그 자체로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행위다. 또 비양육자가 자녀의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이는 신체적 학대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2013년 울산 아동학대 사망, 2016년 평택 아동학대 사망 등도 이혼 가정에서 면접교섭이 차단된 상황에서 벌어졌다.
지난달 초 출범한 ‘부모따돌림방지협회’의 송미강 대표는 2009년 법원 가사 상담위원으로 일하며 부모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는 부모와 아동을 숱하게 봤다. 이들을 상담하고 부모들과 자조모임을 꾸려온 송 대표는 “많은 비양육 부모들이 좌절·무력·분노·우울 등 너무나 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비양육자가 법원에 면접교섭 이행명령을 신청해도 (부모의 정서적 조종을 받는) 자녀가 만남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판사가 기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변호사 약 10명이 합류한 협회는 “ㄱ씨에게 심리·법률지원과 함께 앞으로 이혼가정에서 부모따돌림 형태로 나타나는 아동 정서학대, 면접교섭권 보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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