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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제동원 피해자들 원치 않는 ‘제3자 변제’ 가능한가?

등록 2023-03-13 17:00수정 2023-03-13 23:24

취재진에게 내용증명 접수확인을 보여주는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 연합뉴스
취재진에게 내용증명 접수확인을 보여주는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 연합뉴스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들이 정부가 제시한 ‘제3자 변제’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하면서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이 새 국면을 맞이했다. 정부는 일본 가해기업 대신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배상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법조계에서는 피해자들의 동의가 없다면 현행법상 이 방안이 이행될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94)·김성주(95) 할머니와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100) 할아버지는 13일 “2018년 대법원판결로 확정된 강제동원 위자료 채권과 관련해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재단 쪽에 전달했다.

정부는 지난 6일 일본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을 국내 재단이 대신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승소가 확정된 피해자들이 일본기업들로부터 배상받는 ‘집행 과정’에 개입하는 것으로, 권리 구제를 위한 소송 자체에 개입하지 않는 중재안을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앞서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3건의 사건 가운데 2건의 원고들이 일본 가해기업에 직접 배상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해기업이 손해배상의무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대신 변제한다면 그들의 사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민법 제469조는 제3자도 채무를 변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 의사표시로 이를 허용하지 않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단서를 들고 있다. 민법이 이 규정을 마련한 이유는 금전채권의 일반적인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돈에 ‘꼬리표’가 달리지 않은 이상, 채권자로서는 누구에게든 약속한 돈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사건처럼 채권자(피해자)가 특정 채무자의 변제 만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문제된 사례가 없다. 채권자도 채무자도 원치 않는 변제를 제3자가 나서서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때문에 채권자들은 민법 제469조 1항의 단서 조항에 근거해 제3자 변제의 적법성 여부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강길 변호사는 “민법의 원칙은 ‘제3자 변제’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원고인 피해자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제3자 변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재단 쪽 변제의 수령을 거부하고 일본 가해기업 자산에 대해 현금화 절차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재단 쪽이 피해자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제3자 변제를 강행할 경우, 공탁의 적법 여부를 다투는 절차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탁이란 채권자가 수령을 거부할 경우, 금전을 법원 공탁소에 맡겨 채무를 면하는 제도다. 강제동원 피해자 쪽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일본기업 국내 자산 현금화 소송에서 공탁이 유효하지 않다고 다툴 것”이라고 밝혔다. 제3자 변제의 수령을 거부해 일본기업에 대한 채권이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현금화 절차를 계속 이행하라고 요청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외교부는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는 일본기업 국내재산 현금화 명령 재항고 사건에 “다각적인 외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며 재판을 미뤄달라는 취지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에 피해자 쪽은 ‘재판 개입’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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