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동안 111명의 노동자가 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뒤 근무 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역학조사 중 사망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그 숫자는 매년 늘어 2022년에는 2주에 1.2명꼴로 기다림에 지쳐 세상을 등졌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2018~2022) 역학조사 진행 중 사망자 현황’을 보면 그 수는 2018년 14명에서 지난해 32명으로 5년 동안 2.3배 늘었다. 이는 평균 역학조사 기간이 늘어난 것과 비례한다. 산재보험 적용 여부 판단을 위한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곳은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인데 이 연구원이 결론을 낸 사건의 평균 역학조사 기간은 2018년 221.8일에서 2022년 436.7일로 2배 정도 늘어났다.
질병별 사망 사례를 보면 폐암이 70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만성폐쇄성폐질환(기도가 염증 등으로 인해 좁아지는 질병)으로 19명, 특발성 폐섬유화증(허파꽈리 염증으로 폐가 굳는 질병)으로 9명이 숨졌다. 폐렴(2명)까지 포함하면 전체 111명 중 100명이 폐질환 사망자다. 직업환경연구원 관계자는 “폐질환 산재 신청이 많은 편인데, 신청자가 노출됐다고 주장하는 유해물질도 여러 종류라 작업환경 측정 등으로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노출 정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사망자는 고령층에 집중됐다. 111명의 사망자 중 66.7%인 74명(60대 40명, 70대 34명)이 60대 이상이었다. 역학조사를 오래 기다리는 산재 신청자도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지난 1월31일 기준으로 180일 이상 역학조사가 진행 중인 사람은 574명인데, 이 가운데 60대 이상이 431명으로 75.1%에 이른다. 하루가 아까운 생의 시간을, 기다림의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2016년 다발성 골수종(혈액암) 진단을 받아 2021년 6월 산재 신청을 했지만 1년9개월 가까이 답을 듣지 못한 우원수(69)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지난 2월 경북 영덕의 집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만나 “내가 사망한 뒤에 판정이 나와봐야 무슨 효과가 있겠냐.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그래도 그 결과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답답해했다.
다발성 골수종(혈액암의 일종) 진단을 받은 뒤 산재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우원수씨가 지난 2월20일 경북 영덕군의 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978년 8월 포스코에 입사한 우씨는 2009년 12월까지 31년간 기계 설비를 분해, 교체하고 조립·용접·절단하는 작업 등을 했다. 우씨는 작업 과정에서 사염화탄소, 경유, 시너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화학물질 등에 노출된 것을 병의 원인으로 의심한다. 과거에는 털실로 짜 구멍이 숭숭 난 마스크를 끼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 마스크로는 한기만 피할 수 있을 뿐, 분진과 유증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2009년 퇴직한 그는 어느 날 몸에 담이 오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신경외과에 가도, 정형외과에 가도, 통증외과에 가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2016년 5월 동네 내과의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경북대병원에서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았다. 2주일에 한번 서울 병원에 가서 2박3일씩 입원해 링거 주사를 맞는다. 다발성 골수종의 5년 생존율은 40% 남짓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우씨는 발병 이후 5년을 버텼지만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는 “처음에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뭘 또 그렇게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살아 있다면, 밤톨만 한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산재 결과를 받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가족에겐 회한만 남는다. ‘삼성전자 엘시디(LCD) 천안사업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7년(2001~2008년)을 근무한 뒤 2017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여귀선씨는 산재 승인 통지를 받지 못한 채 2021년 9월 서른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019년 12월 산재 신청을 했지만 역학조사가 끝나지 않아 1년9개월을 기다리다 숨진 것이다. 사망한 지 4개월 뒤인 2022년 1월에야 산재를 승인받았다.
여씨의 남편은 “마지막 가는 사람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그러지 못하니까 애가 탔다”며 여씨와 함께했던 마지막 나날들을 떠올렸다. 산재 승인을 받으면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휴업급여(평균임금의 70%)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간병비가 지급되기에 더 나은 여건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심사를 거쳐 비급여 항목도 지원하는 ‘개별요양급여제도’도 있어 값비싼 비급여 치료를 받을 가능성도 열린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린 여씨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답을 듣지 못했다. 남편은 “하루하루 상태가 악화되는 사람이 기다리는 것인데 얼마나 시간이 귀하겠냐. 무엇 때문에 (역학조사) 결과가 늦어지는지 연락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5년 동안 역학조사를 기다리다 숨진 111명, 그 절망의 숫자가 언제 줄어들지 알 수 없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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