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문제 해결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은폐율’이다. 산재보험은 재해 노동자 또는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해야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구조이다. ‘신청주의’를 채택하다 보니 사업주의 눈치를 봐서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2021년에는 ‘은폐되는 산재 건수가 전체의 66.6%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도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 또한 2014년 ‘산재 은폐율이 최소 54.8%에서 93%에 달한다’는 연구보고서(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를 냈다.
노동계는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등 취약 계층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이 정규직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유해물질에 노출됐더라도 수년에서 수십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 암에 걸린 상당수 노동자는 병의 원인을 ‘운명’이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 채 근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목수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백혈병에 걸린 하청업체 노동자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하다 병을 얻은 것 같아 산재 신청을 권유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 회사를 의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럽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산업재해율은 낮지만 산재사망률은 높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낸 ‘한국의 사회동향 2019’를 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산업재해율(노동자 100명당 재해자 비율)은 0.48%로 유럽 29개국 평균인 1.05%에 견줘 낮지만, 산재사망률은 유럽 평균인 1.95명(노동자 10만명당)보다 2배 이상 높은 5.2명이다. 이는 숨길 수 없는 사망 산재를 제외한 다른 업무상 재해는 상당수 은폐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학과장은 “한국의 산재 은폐율이 높은 이유는 노동자가 회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햇볕 정책’ 도입을 고민해봐야 한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하도록 사업주를 독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산업재해가 아닌 일반 재해의 경우 감독이나 처벌보다 예방과 지원에 더 집중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산재 신청이 크게 늘어나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실태를 알아야 산재를 줄이는 법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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