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단지에 내걸린 펼침막. 곽진산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70대 경비원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지난해 말 바뀐 관리소장의 ‘갑질’ 때문에 고인이 심리적 압박을 받아왔다고 증언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14일 아침 7시40분께 경비원 박아무개(74)씨가 자신이 관리하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15일 밝혔다.
박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인 7시16분에 “관리소장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사진으로 찍어 아파트 경비대장에게 전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가 숨진 사실을 접한 뒤, 동료 경비원들은 “박씨가 부당한 인사조치, 인격적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일터인 우리 아파트에서 투신했다”고 쓴 전단을 아파트 단지 곳곳에 붙였다. 관리소장의 책임을 물으며 “물러나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아파트 정문 등에 게시했다.
갑질 의혹을 받는 관리소장은 지난해 12월9일에 새로 부임했다. 경비원들은 박씨가 작년 말부터 새 관리소장으로부터 업무 외의 일을 지시받는 등 심리적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한다. 박씨와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는 경비원 ㄱ씨는 “고인은 10년 중 7년을 경비반장으로 일했던 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일반 경비원의 업무인 초소 근무를 들어가라고 하니, 얼마나 모욕적이었겠느냐”고 했다. 박씨는 지난 8일 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ㄱ씨는 반장이던 박씨가 관리하던 경비원 중 한명이 최근 작업 실수를 하자, 이를 빌미로 관리소장이 모욕적인 발언과 함께 근무지 이동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또 새 관리소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하지 않았던 불법 주정차 교통안내 업무도 박씨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경비원 최아무개씨는 “관리소장이 경비원 ‘인원을 줄인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 반장이라면 그런 말을 들으면 심리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다.
지난 9일엔 같은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70대 청소노동자 김아무개씨가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숨지기도 했다. 김씨는 숨지기 전날 아파트 청소 용역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갑질 의혹에 대해 관리소장은 “유서라 불리는 호소문은 고인이 작성할 수 없고, 대필이 의심된다. 내용엔 갑질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며 “경비원들에게 호통하거나 소리친 적이 없고 오히려 과도한 충성을 보이는 경비원들에게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또 “관리소장에게 경비 지시 업무는 없다. 모든 것은 경비대장에게 위임했다”고 했다. 청소노동자 사망과 관련해서 그는 “앞서 사망하신 청소노동자도 해고한 적이 없고 그분이 오히려 더 일하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은 없는지 등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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