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12월, 이른바 ‘창고장’으로 불리는 마약 보관책 ㄱ씨는 합성대마 783통, 엑스터시 587통규모의 마약을 관리했다. 무려 39만명이 동시에 투약 가능한 분량이다. ㄱ씨와 마약 유통을 했던 일당들은 공급책→보관책→배달책으로 구실을 나눴는데, 지난 7일 검찰이 구속기소한 일당 29명 가운데 배달책 ㄴ씨는 불과 17살 밖에 되지 않은 청소년이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이른바 ‘마약 음료수 사건’으로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마약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마약류 사범으로 단속된 청소년수가 5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7일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백서와 마약류 월간 동향 등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으로 단속된 19살 이하 청소년은 481명으로 2013년(58명)과 견줘 8배 이상 증가했다. 19살 이하 마약류 사범은 2013년 58명에서 2014년 100명대, 2019년 200명대로 올라선 뒤 2021년 400명대로 늘었다. 특히 고등학생 연령대에 해당하는 15∼18살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 291명으로 통계가 시작된 2016년 55명과 비교하면 5.3배 증가했다. 15살 미만만 따져도. 2021년까지 한자리수 이던 마약류 사범들은 지난해 41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마약 문제와 관련해 초·중·고교 담장 안이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교직원이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돼 물의를 일으킨 일도 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0년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마약범죄 연루 교사 징계 현황’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교사 4명이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돼 해임, 정직, 불문경고 등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등은 교사의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법이 개정돼 2021년 6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교육부도 교원자격검정령 시행규칙을 개정해 2021년 6월부터 교사자격을 취득하려면 마약과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의사의 진단서 또는 건강검진 결과통보서를 첨부해 제출하도록 했다.
여기에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건네고 부모들을 협박한 사건은 마약 유통이 일부 학생과 교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의 일상에 파고들고 있는 실상을 보여준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0대 마약류 사범은 꾸준히 늘어날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증가세가 가팔라져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찬영 건국대 교수(의학전문대학원 약리학교실)도 “청소년기인 학생들의 경우 뇌가 아직 발달 중인 상태이기 때문에 마약을 투약했을 때 성인에 비해 뇌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욱 크다”며 “청소년기 특정 약물에 중독되면 향후 다른 약물에 추가로 중독될 위험성도 매우 높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마약 관련 범죄가 학교 안팎으로 파고들자 교육 당국도 학생 대상 약물 교육 시기를 앞당기는 등 대응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기존에 1년에 걸쳐 실시하던 학생 대상 약물 오남용 교육을 올해는 1학기 내에 완료하는 것으로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 오는 5∼7월에는 교직원과 학부모 대상 마약예방관련 연수를 진행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경찰청에서 (마약 음료수 관련)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을 받아 가정통신문 형태로 6일 배포했다”며 “학생들의 마약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고 치료·재활 등을 할 수 있도록 교육청과 서울시, 경찰청, 마약퇴치운동본부 등 4개 기관이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이 강남일대 학원가와 유흥가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마약 특별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이날 "추가 피해 예방을 위해 타인이 제공하는 내용물이 확인되지 않은 음료수를 절대 마시지 말고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면 곧바로 112에 신고해달라는 내용의 카드뉴스를 이날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각급 학교와 학원에 배포했다"며 "앞으로 법무부와 마약퇴치운동본부 등과 협조해 각급 학교의 마약예방 교육 강화를 위한 전문 강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제 기자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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