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나눠주는 피의자 2명(왼쪽)과 이들이 나눠준 마약 음료수(오른쪽). 강남경찰서 제공.
강남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 ‘마약 음료’를 건넨 일당이 준비한 100병 중 약 10병이 유포된 가운데, 해당 음료 병은 처음 중국에서 국내 반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국내에서 이들에게 범행을 지시하고 물건을 보낸 ‘중간책’들을 비롯해 국외 배후 조직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 3일 강남구 일대에서 학생들에게 건네기 위해 최초로 준비된 마약음료 100병 중 10여병이 유포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8일 밝혔다. 경찰은 90여병 중 35병을 회수하고 나머지 음료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일부는 버렸다고 주장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음료가 추가로 건너갔을 가능성도 있어 조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마약 음료를 건네받은 학생들 부모가 받은 협박 전화를 추적한 결과, 발신지가 모두 인천의 특정 지역으로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국외에서 전화를 걸더라도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뜨도록 하는 변작 중계기가 쓰였다. 마약 음료를 직접 건넨 일당 4명은 모두 경찰 조사에서 “마약 음료인지 몰랐다. (자신들은) 알바”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택배나 퀵서비스 등 ‘비대면’으로 마약 음료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경찰이 이를 역추적했더니, 국내에 들어오기 전 해당 병이 중국에서 온 것을 확인했다. 이 병에 마약 성분을 넣어 음료를 제조한 시점 등에 대해선 경찰이 조사 중이다.
총책은 국외에 있고, 중계기 등으로 번호를 바꿔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중간책을 두고 말단 아르바이트생을 점조직 형태로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행 수법과 유사하다. 이에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전날 마약범죄수사대를 찾아 “수법이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만큼 금융범죄수사대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3일 강남구 일대에서는 ‘최근 개발한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수’ 시음행사를 가장해 고등학생들에게 마약이 든 음료수를 마시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는 학부모 1명을 포함한 7명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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