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9일 휠체어를 이용하는 뇌병변장애인 유진우(28)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서울 종로구 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유진우씨 제공
“회원님은 눈이 불편하신 상황이니 사고가 날 것 같기도 해서 환불을 진행해드리려고 합니다.”
지난달 28일 저녁 시청각장애인 박관찬(36)씨는 황당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날 낮 새로 등록한 서울 강서구의 한 헬스장 쪽에서 “헬스장은 회원님께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곳”이라며 환불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박씨가 “20년 가까이 다른 헬스장을 다녔고 혼자 충분히 운동할 수 있다. 헬스장의 위험한 환경은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똑같이 겪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헬스장 쪽은 버텼다. ‘보호자 동반’ 또는 계약서에 ‘장애로 인해 사고가 날 경우 헬스장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적어야만 등록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박씨는 다른 헬스장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난 17일 <한겨레>는 시청각장애인 박관찬(36)씨와 장애인도 헬스장 등록이 가능한 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강서구 일대 공공체육시설 2곳, 사설 헬스장 2곳에 동행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의 한 공공체육시설에 들어가고 있는 박관찬씨. 고병찬 기자
최근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이라며 매일 운동에 힘쓰는 이들이 많지만, 박씨처럼 아직도 265만3000여명(지난해 말 기준)의 등록 장애인들은 운동하기 위한 장소조차도 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생활체육시설 속 장애인 차별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들이 접근 가능한 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7일 <한겨레>가 박씨와 함께 강서구 일대 공공체육시설 2곳과 사설 헬스장 2곳을 다녀보니 박씨가 쉽게 등록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구립 공공체육시설인 체육센터는 “회원님이 ‘정 괜찮다’고 하면 저희에게도 면책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면서 “보조인이 함께 오면 더 확실하게 등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을 보조할 수 있는 인력은 없다”고 했다.
사설 헬스장의 한 직원은 박씨의 사정을 듣고선 “사고 위험 때문에 등록이 안 될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박씨가 충분히 운동할 수 있다고 하자, 그제야 보호자 동반이나 면책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씨는 “비장애인이 운동 기간이나 금액을 상담할 때 장애인들은 계약서에 면책 규정을 적어야 한다는 요구부터 듣는다”고 말했다.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도 박씨와 비슷한 일을 허다하게 겪는다. 25살 발달장애인 딸과 함께 사는 마명주(51)씨는 코로나19 이후 집 근처 공공체육시설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장애인 수영프로그램이 사라진 뒤, 딸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거의 없다고 했다.
마씨는 “공공체육시설에 아무리 민원을 넣어도 새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뇌병변장애인 유진우(28)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2021년 9월에 운동을 시작하려고 헬스장 10곳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그중 1곳만 이용이 가능했다”고 했다.
지난 17일 <한겨레>는 시청각장애인 박관찬(36)씨와 장애인도 헬스장 등록이 가능한 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강서구 일대 공공체육시설 2곳, 사설 헬스장 2곳에 동행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의 한 사설 헬스장에서 등록이 가능한지 상담하기 위해 기다리는 박관찬씨. 고병찬 기자
이런 현실에 장애인들은 운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도 선뜻 나서기 어렵다. 19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 장애인 생활체육조사’와 ‘2022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면, 최근 1년간 한 번이라도 운동을 한 비장애인은 88.8%였지만, 장애인은 51.2%에 그쳤다.
장애인의 41.9%는 향후 운동에 참여할 의향이 있었지만, ‘운동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11.4%), ‘운동프로그램이 부족해서’(7%), ‘체육시설이 부족해서’(4.3%) 꺼리고 있었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장애인들은 건강 문제도 있겠지만 갈 수 있는 체육시설이 없어서 운동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설 체육시설에선 출입 거부를 당하는 등 편견이 존재한다”고 했다.
장애인들의 운동 의욕을 떠받칠 생활체육 프로그램이나 시설 확충 등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전국에 장애인 전용 체육시설은 73곳에 불과하다. 생활밀착형(장애인형) 국민체육센터인 ‘반다비 체육센터’는 현재 전국 5곳(서울 1곳)만 운영 중이다. 문체부는 이 센터를 89곳까지 늘린다는 게 확정됐다는 설명이지만, 국비에 지방비를 매칭하는 사업이라 언제 완공될지 시점은 알 수 없다. 올해 문체부의 장애인 생활체육 진흥 및 지원사업 예산은 990억8500만원으로, 문체부 체육 부문 예산(1조6398억원)의 약 6%에 불과하다.
김권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책임연구원은 “장애인이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은 모든 국민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만큼 기존 체육시설들도 장애인들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도록 새로 짓거나 개보수해야 한다”며 “당장 비용이 들겠지만, 장애인들의 의료비와 고립감 해소 등의 비용을 따져보면 훨씬 적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7일 <한겨레>는 시청각장애인 박관찬(36)씨와 장애인도 헬스장 등록이 가능한 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강서구 일대 공공체육시설 2곳, 사설 헬스장 2곳에 동행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의 한 사설 헬스장에서 등록이 가능한지 상담하기 위해 기다리는 박관찬씨. 고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