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24일 오전 전세피해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피해자들은 하루하루가 급해 죽을 것 같은데….”
2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우리은행 지점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 김아무개(31)씨는 이날부터 시작된 전세사기 피해자 저금리 대환 대출을 받기 위해 화곡동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피해지원센터와 우리은행 지점을 1시간30분 동안 4차례 오갔다고 했다.
센터는 피해확인서가 필요 없다는데, 은행은 “관련 내용을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씨는 “은행에서는 ‘너무 빨리 왔다’는데,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후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보증금 회수를 위해 기존 주택에서 계속 거주하며 기존 전세자금 대출을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정부가 ‘저금리 대환대출’(연 1.2~2.1%)을 시작한 첫날인 24일, 가장 먼저 대출을 시작한 우리은행에서는 혼란이 이어졌다. 정부의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대환대출은 피해확인서가 없어도 되지만 은행이 자체 대출과 혼동해 피해확인서를 요구하면서 빚어진 혼선으로, 피해자들은 또다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날 오전 9시30분께 <한겨레>가 방문한 서울 화곡동 전세피해지원센터에는 대환대출 시행 소식을 듣고 찾아온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지역은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한 지역이다.
인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24일 오전 전세피해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피해자들 사이에 ‘피해확인서’가 있어야 대환 대출이 가능하다고 잘못 알려지면서 확인서 발급 요청이 쇄도했지만, 센터 쪽은 “피해확인서는 필요하지 않다”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주택도시보증공사 관계자는 “피해확인서를 발급받는 요건과 대환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서 심사하는 요건이 같기 때문에 직접 은행에서 상담을 받으면 된다”며 “피해확인서를 발급이 필요한 경우는 비정상 계약 등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피해자는 피해확인서가 ‘예외적인 경우’에만 필요함에도 발급조건이 까다로워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임차권 등기 설정’을 하지 않아 대환대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직장인 박아무개(35)씨는, 정작 센터에서도 임차권 등기가 돼있지 않아 피해확인서 발급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박씨는 “임차권 등기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면서 하는 것인데, 왜 기존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대환 대출을 하면서 등기 설정을 요건으로 두느냐”며 “임차권 등기 설정을 하려면 또다시 40만~50만원가량을 지출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주택도시기금 대환 대출을 받으려면, 신청자는 임차권 등기 또는 임차권 등기 신청서(임대인이 사망한 경우)를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피해 주택에 거주해야 한다. 임차권 등기는 계약 종료 뒤에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보증금 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은행에 증빙하기 위한 서류다.
인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24일 오전 전세피해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혼란은 우리은행 창구에서도 계속됐다. 화곡동 소재 우리은행 지점 창구 직원들은 대환 대출 상품을 잘 알지 못해 “이사를 해야만 한다”, “피해확인서가 필요하다”고 잘못 안내했다. 기존 주택도시기금 전세자금 대출과 달리 이날부터 시행된 대환 대출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다른 주택으로 이사하거나 피해확인서를 받지 않아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오인한 것이다.
실제 기자가 은행 상담 창구에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환 대출을 받기 위해서 피해확인서를 받아와야 하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세사기 피해자 박씨는 “우리은행 지점 두곳에서 모두 ‘이사를 해야 한다’고 안내했다”고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출시 첫날이라 상담 등에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개선점을 파악해 향후 교육 등을 진행하는 등 대출 상담과 실행에 문제가 없도록 조처할 계획”이라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