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에 위치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입구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통령실이 국회를 통과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더불어민주당 추천 몫의 위원에 대해 재심 선고 결과를 이유로 임명 배제 방침을 밝힌 지 3주가 지났지만, 국회사무처에 위원 재추천 요구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선 국민의힘 추천 진실화해위 위원이 선출됐고, 정작 임명 배제된 위원을 추천한 민주당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명 배제된 허상수 재경4.3희생자및피해자 유족회 공동대표는 국가배상 소송을 검토 중이다.
4일 <한겨레> 취재 결과, 대통령실은 지난 4월21일 허상수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위원을 임명한 뒤에도 공식 문서로 허상수 대표의 임명 배제 사실과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두 달 넘게 걸린 허상수 대표 인사검증 과정에서 2021년 8월 재심 선고유예 판결을 국가공무원법 33조상의 결격사유로 삼았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40여년 전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을 문제삼는 것은 명백한 이중처벌에 해당해 설득력이 전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새롭게 선고유예가 선고되더라도 종전의 확정판결을 근거로 진행된 집행유예 기간을 유효한 형의 집행으로 보아 새 선고유예 기간에서 해당 기간을 빼야 하고, 이 경우 형법상 면소로 간주되는 선고유예 기간 2년이 지나므로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상수 대표는 이날 <한겨레>에 "재심 판결을 근거로 한 진실화해위 위원 임명배제가 철회되지 않을 경우 향후 국가배상 소송 진행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두 차례 내기는 했으나 면피용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국회를 통과한 허상수 대표에 대한 임명이 거부됐는데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국민의힘 추천 진실화해위원 투표에 임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런 경우는 원내대표단에서 지침을 주기 마련인데 들은 바가 전혀 없다”면서 “이건 안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김의겸 의원 역시 “이제봉 위원 선출안 때는 여러 사람과 이야기했지만 이번엔 누가 올라오는지도 몰라서 (김웅기 변호사가 누구인지) 개별적으로 검색해 판단했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지난번 국민의힘이 추천한 이제봉 교수 부결에 대한 부담감이 컸겠지만, 국민의힘에서 재추천한 김웅기 변호사 선출안 때 허상수 공동대표 건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고 대책을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지금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 어렵게 만든 진실화해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국민의힘쪽에 일방적으로 끌려갈 거냐”고 말했다. 그는 “2기 진실화해위는 국가차원의 마지막 진상규명 기회”라고 덧붙였다.
2기 진실화해위에는 2021년 5월27일 조사를 개시한 뒤 올해 1월31일까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2만92건이 신청접수됐다. 1기 때 접수된 사건(1만1175건)보다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 가운데 조사 진행중인 사건은 1만2918건인데, 진실규명이 된 사건은 1180건으로 10%도 안된다. 전쟁과 독재 시절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90%가 넘는 사건이 진실규명이 안됐지만 진실화해위 활동 기간은 내년 5월26일까지 1년여 남았다.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 4월11일 충주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직후 유가족들과의 간담회에서 “1년간 아무리 조사를 빨리 진행한다 해도 45~55%의 사건을 종결할 수 있을 예정이라 위원회 활동 1년 추가연장을 계획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웅기 변호사에 대한 대통령실의 위원 임명이 이뤄질 경우 위원장을 비롯한 진실화해위 전원위원회에 참여하는 상임·비상임 위원 8명의 구도는 대통령 지명 및 국민의힘 5, 민주당 3이 된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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