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도움 받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자해 충동이 강해지고 자살 생각을 빈번하게 하게 됐다.” 자해 및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10대들이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폐해를 경고했다. 지난 19일 <한겨레>와 만난 이들은 “자기 낙인과 불행 경쟁을 부추기는 곳”이라며, 커뮤니티가 청소년의 치유와 회복을 도울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현재 같은 아픔을 겪는 청소년에게 손을 내미는 비영리기관 멘탈헬스코리아 소속 ‘정신건강 리더’(피어 스페셜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김지안(18)양은 과거 커뮤니티에서 동반 자살할 사람을 구한 경험이 있다. 김양은 이들 커뮤니티의 가장 큰 문제점을 “자살이나 자해 정보를 정말 자세하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양은 “자살 도구와 방법과 관련한 정보들이 커뮤니티에 많이 퍼져있다”며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받으려고 만났지만, ‘난 이만큼이나 힘들고 우울한데, 너는 (겨우) 이만큼 힘들지 않아?’ 식의 불행 경쟁도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제게 던진 첫 질문은 ‘혹시 트위터 같은 걸 하냐’였다”며 “우울증 갤러리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부터 전문가들은 커뮤니티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통신자문특별위원회는 경찰의 우울증 갤러리 게시판 차단 요청에 대해 “차단이 필요한 게시물의 양이 많지 않고 우울증 환자들이 해당 공간에서 위로를 받는 효과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자문 의견을 내놨다. 방심위는 22일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어 해당 안건을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트위터에서 ‘#자해계’ 커뮤니티를 운영한 적이 있는 김수현(21)씨는 “‘자해계·우울계 소속’이라는 소속감이 때론 ‘나는 타인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강화한다”며 “점점 자신과 비슷한 아픈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고립된 상태에 놓이게 되고, 결국 우울증이나 자해·자살 충동이 심해진다”고 했다.
(왼쪽부터) 김수현(21)씨, 이재현(19)군, 김지안(18)양, 이지민(18)양. 이들은 비영리기관 멘탈헬스코리아의 ‘정신 건강 리더(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로 자살이나 자해 등의 아픔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공공 정책에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울증·자해 등 아픔을 겪는 청소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는 이유는 뭘까. 이들은 위클래스 같은 현재 초·중·고등학교 상담 시스템이 청소년들의 아픔을 ‘위험’으로 인식하고, 이를 색출하는 데 집중한다고 지적한다.
“학교 ‘위클래스’ 상담에서 ‘자살’ 한마디 했는데 교장, 교감 선생님이 다 모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렸어요. 이후 학교로부터 ‘병원에 입원 안 하면 절대 등교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어요.”(이재현·19)
김수현씨는 “학교 상담에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더니 상담 선생님이 ‘이 사실을 바로 부모님께 알려야 한다’며 학교나 부모님에게 내가 위험하다고 전했다. 전교에 내 이야기가 다 퍼지기까지 했다. 비밀 보장이 안 되니, 청소년 입장에선 ‘내가 왜 상담을 받아야 하나’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재현군은 “학교에서 정신건강 평가를 할 때도 ‘자살 고위험군’, ‘위험군’, ‘일반 관리군’ 등으로 나뉘는데, 아픔을 겪는 청소년들을 ‘위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분류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상담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커뮤니티 업체, ‘검색어 제한’ 외에 회복도 고민해야
우울증 갤러리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폐쇄만이 답일까. 이들은 커뮤니티 자체는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지민(18)양은 “청소년을 소비자로 삼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자살·자해 같은 용어를 필터링만 할 게 아니라, ‘자해 뒤 상처 제대로 치료하는 법’ 같은 치유를 위한 정보를 어떻게 제공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양은 “코로나19 확산 초·중반 때 미국 청소년 정신건강 단체들이 온라인 페이지를 정말 많이 만들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으면 축하해주기도 하는 등 그런 이야기를 듣기 위한 이벤트를 많이 만들더라”라며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온라인상에서 청소년들이 긍정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각자의 아픔을 딛고 이제는 ‘나의 아픔을 강점’으로 삼아 치유의 손을 내미는 이들은 어디선가 아파하고 있을 또 다른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아프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의미 있는 사람이에요. 문제 덩어리가 아니라.”
(왼쪽부터) 김수현(21)씨, 이재현(19)군, 김지안(18)양, 이지민(18)양. 이들은 비영리기관 멘탈헬스코리아의 ‘정신 건강 리더(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로 자살이나 자해 등의 아픔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공공 정책에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